신안의 명물, 무한의 다리

by 산들

신안의 둔장해변에는 ‘무한의 다리’라 이름 붙여진 다리가 있다. 신안 둔장해변에서 무인도인 구리도와 할미도까지 이어지는 1004m의 다리이다. 신안 자은도 해사랑 길에 포함된 다리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이 그렇지 1km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거기다가 바다 위에 말뚝을 박고 다리를 놓는 공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육지에서도 그만한 거리라면 공사비가 상당히 나올 것이다. 하물며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일이란 생각 이상으로 난공사였을 것이다.


지난번 신안을 왔을 때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무한의 다리’라는 표지판이었다. 분계해수욕장에 갈 때도 어김없이 ‘무한의 다리’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금은 더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잠시 유예시켜 두었다. 언젠가는 가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때가 드디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한의 다리’를 만났다.


가기 전에 ‘무한의 다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왜 하필 무한의 다리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한’이라는 이름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진시황 시절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영생불사의 꿈을 꾸어 왔다. 자신의 한정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은 그를 기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때로 이러한 시도는 사후세계를 상징하는 무덤을 포함해서 웅장한 건축물로 이어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이 그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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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에 다른 이름도 아닌 ‘무한’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차피 바다로 가는 길은 무한으로 이어지던 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다른 평범한 다리야 많지만 무한의 다리는 거의 없지 않은가. 무한의 다리가 없는 자은도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 다리가 없었더라면 그리 오래 해변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다리가 신안의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무작정 오래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다리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리가 있다면, 그것도 바다 위에 있는 다리라면 한 번쯤 걸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방이 탁 트인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다리라면 조금 더 근사해진다. 어쩌면 이 다리는 바다로 향한 우리의 시선을 조금 더 연장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다리와 함께 한다면 물이 빠진 갯벌이어도 좋고 바닷물이 찰랑이는 바다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바다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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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배 위에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올 것을 주문하신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무서워하다 물에 빠진다. 이처럼 물 위를 걷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꿈을 비슷하게나마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멋지지 않은가. 해변에서 물이 빠진 바다를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처럼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또 각별함을 준다.


다리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무엇을 연결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시를 썼지만 그 섬에 가기 위해서도 이동은 필요하다. 특히 섬에서라면 이동이 갖는 의미는 달라진다. 배로 이동하는 일이 필수인 섬에서 파도가 거세거나 풍랑이 일 경우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다리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섬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동 제한을 뛰어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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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한의 다리’는 그런 다리와 다르게 철저하게 관광용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현지인들이 이 다리를 이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에게는 이 다리 자체가 관광지나 관광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리 하나만 보러 오는 것은 아니리라. 그들은 신안이 품고 있는 바다를 보러 온다. 다리는 그 바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모든 일에는 경제효용의 법칙이 따르는 법이다. 비록 신안군의 명물이 되기는 하였으나 관광객이 얼마나 찾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 있어 보니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예전에 다리가 없었을 때 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구리도와 할미도까지 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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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 질 녘 무한의 다리를 걷고 있으면 저 멀리 풍력발전기 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유명한 자은도의 일몰이 더 근사해 보이는 순간이다. 구리도를 지나 할미도로 향한다. 바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 도전해보고픈 충동이 생길 수도 있으나 낚시와 거리가 먼 나로서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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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도와 달리 제법 큰 규모의 할미도에는 섬 둘레를 돌 수 있는 코스와 섬 위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섬 위로 올라가면 인근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마 무한의 다리가 놓이기 전에도 사람들이 찾기는 하였겠지만 이전이라면 일부라도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살 만한 동네가 많은데 구태여 여기까지 사람이 와서 살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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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를 잘 맞추기만 한다면 해변으로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보면서 다리를 건너오는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풍차처럼 돌아가는 자은도의 일몰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잠시 자은도의 일몰에 눈을 빼앗겨도 좋다. 나 역시 가을이 가는 길목에서 눈을 자은도에 묻어두고 왔다. 가끔 그래도 된다면 그러고 싶었던 가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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