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해마다 연말이면 해외를 나갔다. 아마 6~7년은 내리 그랬을 것이다. 방학에 맞추어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말 즈음에 시간이 났다. 당연히 항공료는 비쌌지만 그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12월이 되면 항공권을 알아보고 여행코스를 짜고 그런 여정을 반복했지만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충분했다.
작년 연말에 부스타 샷을 맞은 이후 4일째인데 아직도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 첫날은 버틸 만하더니 점점 몸이 무기력해졌다. 견디다가 두통약을 먹었으나 여전히 상태는 좋지 않다. 몸이 안 좋으니 여행 생각이 더 간절하다. 어느 해이던가는 한국이 제일 추웠다는 때에 따뜻한 동남아에 있었다. 하기는 코로나가 시작하던 재작년만 해도 베트남에 2주 정도 있다가 왔다. 그런 시절이 조만간 오기를 바란다.
유튜브에서 에베레스트 트레킹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네팔에 갔던 게 생각난다. 잠시 머물렀던 포카라에서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동안 사무실에만 앉아 있어서 저질 체력이라는 생각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녀올 만하다는 말에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히말라야 산행이었다.
새벽에 주인장의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터미널에서 시작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지프차로 산행이 시작되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기이다 보니 비로 길이 엉망이 된 곳이 많았다. 결국 처음 목적한 곳에 가지 못하고 그 아래 마을인 힐레에서 시작해야 했다. 하루에 1500m에서 2860m까지 10시간에 걸친 산행은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만약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니 무조건 갈 수밖에 없었다. 숨은 턱턱 막히고 체력의 한계가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런 산행을 할 때마다 내 두 발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지만 막상 가다 보니 몸은 또 예전의 나를 기억하고 적응한다. 나는 이 발로 백두산을 올랐고, 한라산을 올랐다. 오직 발로 걸어야 하는 길은 얼마나 정직하던가. 나는 그날 히말라야의 흙냄새와 풋풋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몸으로 받으며 걸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몸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가는 길은 몰랐지만 고라파니 표지판을 보며 올랐다. 다행히 외길이라서 그냥 오르면 되는 길이었다. 이게 웃기는 게 오르막 내리막이 없이 그냥 쭉 오르막이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막연하게 숙소로 정했던 곳을 무심히 지나쳤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한참을 올라간 후에야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을 지나쳤다는 걸 알았다. 산에서 한번 올라간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어차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길이기에 그만큼 힘이 빠진다. 그런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올라가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이러다가 히말라야에서 노숙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에서 노숙이라니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다행히 음료수를 사기 위해 들어간 가게에서 스페인 친구들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내 여정은 진짜 고독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속도도 빠를 뿐만 아니라 중간에 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키가 큰 친구들은 다리도 길다. 그리고 그건 내 관할구역 밖의 문제였다.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에게 먼저 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가던 도중에 거머리를 만난 것도 잊을 수 없다. 느낌이 먼가 이상해서 보니 거머리였다. 우기에 거머리는 나무에서 떨어져 사람에게 달라붙는다. 그대로 두면 몸이 통통해질 때가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 히말라야를 갔던 이들은 거머리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포카라 약국에서 기피제도 사서 바르고 소금도 준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마을도 없었으니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행히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조형물이 나왔다.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이제 살았구나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만약 히말라야에서 노숙을 해야 했더라면 어땠을까? 마을 입구에서 허가증을 보여주고 고라파니로 가는 길은 절로 신이 났다.
입구에서도 한참을 가야 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힘이 났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드디어 마을이 보였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한다. 골목길을 오르다 보니 몇 군데 롯지가 나온다. 아, 저 멀리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스페인 친구들이었다. 이런 우연이. 나는 그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포카라에서 고라파니까지 길고 긴 하루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