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내가 순천만에 가는 이유
겨울철 맑은 날, 순천만으로 간다. 만약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봄 날씨라고 해도 믿을 만큼 따사롭다. 순천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광활한 지역을 채운 갈대의 바다와 윤슬을 머금고 있는 습지이다. 누가 뭐라 해도 가을이야말로 갈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계절을 잊고 살다 가도 갈대꽃이 바람에 나부끼면 어느새 가을이 훌쩍 와 있었다. 그걸 보면서 비로소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을이 되면 나는 갈대를 품은 순천만을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순천만에 갈 때는 대부분 가을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순천만까지 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순천만 습지라는 교통 표지판이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심장은 뛰기 시작하고 이제 곧 광대한 갈대숲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순천만 습지의 입구를 들어서면 얼마 걷지 않아 50만 평에 달하는 갈대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게다가 갈대의 높이 또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터라 보고 있으면 장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 어떤 때는 순천만을 가득 메운 갈대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 숨겨둔 눈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갈대의 맨얼굴을 어루만지고 볼을 쓰다 듬고 훌쩍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밤에 칠게가 갈대를 갉아먹는 소리가 제법 운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한여름 매미 한 마리가 울면 숲 전체가 화답을 하듯이, 어쩌면 칠게 한 마리가 갈대를 갉기 시작하면 다른 칠게도 어울려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낮에 보는 갈대도 장관이지만 밤에 보는 갈대는 더 기대가 된다. 수천수만의 갈대 병사들이 밤바람의 도움을 받아 말달리듯 대지를 달려가는 소리야말로 세상의 어떤 화음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허락한다면 달 밝은 밤 아래 순천만 갈대를 만나고 싶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무리에 눈을 빼앗긴 채 칠게가 갈대의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에 귀를 맡기고 싶다. 이왕이면 달밤이면 더 좋으리라. 이쯤 되면 순천만 습지는 혼자 걸어도 좋고 친한 이와 더불어 걸어도 좋은 성지임이 분명하다.
한때 영암 월출산에서 억새밭을 만난 일이 있다. 산구비를 점령한 억새가 일렁일 때마다 산 전체가 들썩이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그런 장관은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게 갈대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이후 갈대와 억새 차이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헷갈렸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순천만에서 갈대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였고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합주였으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술품이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갈대를 볼 수 있지만 순천만처럼 광대한 지역은 찾기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갈대 하면 자연스럽게 남도 순천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순천만에서는 갈대 외에 모새달과 물억새 등도 만날 수 있다. 겨울 갈대와 모새달을 구분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잎이 남아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사람들이 걷는 탐방로변의 갈대는 유독 키가 크다. 그 이유는 일조량의 차이와 양분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지역에 있는 갈대 크기가 다른 이유는 동일한 공간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생존전략의 부산물인 셈이다.
관광객들은 이 드넓은 습지를 걸으며 갈대의 바다를 눈에 담거나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풍경은 눈에 담고, 그도 모자라면 가슴에 담는다.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순천만 습지야말로 각박한 삶에 내몰려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자 위안의 쉼터이다. 눈 밝고 지혜 있는 자들이 이 광대한 땅을 지켜낸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 만약 이곳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더라면 지금 순천만을 찾는 겨울철새들은 사라졌을 것이며 또 우리는 얼마나 허탈했을 것인가. 이 겨울, 우리가 순천만에 가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