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과 흑두루미

by 산들

순천만은 전남 남해안의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다. 순천만은 남해안 개펄 가운데 자연생태를 비교적 잘 보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잘 보전된 개펄을 보유한 덕분에 풍부한 먹잇감이 넘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흑두루미 등 두루미류를 비롯한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난다. 개펄에 사는 작은 물고기, 새우, 조개 등은 철새들에게 겨울 한철을 날 수 있게 만드는 든든한 영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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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겨울 순천만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겨울철새의 백미인 흑두루미와 여러 철새를 한꺼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2만 마리도 채 남아 있지 않는 멸종위기종(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자료목록 취약종)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두루미들은 강원도 철원, 경상도 주남, 전남 순천만, 그리고 충청도 서천을 주로 찾는다. 천여 마리에 가까운 개체가 한꺼번에 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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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루미를 볼 때마다 그들의 하얀 깃이 시베리아의 눈발을 머금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두루미들이 눈발에 휩싸인 시베리아의 모진 추위를 머금은 하얀 깃을 달고 와서 한 겨울을 이겨내는 느낌이 든다. 두루미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베리아의 매서운 한파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루미를 모르는 이라도 학을 이야기하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십장생의 하나로 꼽히는 학은 선비들의 기품을 대변하는 영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긴 다리를 뽐내며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와 힘찬 날갯짓에 반한 이들은 학을 병풍과 그림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부자리와 베갯머리에도 그려 넣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학을 사랑했다. 지금도 십장생도나 민화에서 흔히 학을 만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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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는 몸 크기가 150cm 내외에 달하는 대형조류이다. 천연기념물 제202호인 두루미는 큰 날갯짓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한쪽 다리를 깃털 안으로 넣어서 추위를 이겨낸다. 우리가 흔히 두루미를 볼 때 한쪽 다리만 보이는 이유이다. 항상 발이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동상이 걸린 두루미도 생기기도 한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DMZ 두루미평화타운에 박제 상태로 남아 있는 두루미 한 마리는 동상에 걸려 다리가 온전치 못하다.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는 겁이 많다. 조그만 소리나 움직임에도 놀라서 하늘로 솟아오른다. 잠시만 방심해도 포식자의 먹이로 바뀌는 운명 때문에 그들에게 발달한 것은 눈치와 생존본능이다. 위험을 느낀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가 한꺼번에 고개를 드는 모습은 장관이다. 평소 논에서 한가롭게 낙곡을 먹다가도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험이 감지되었다고 여기거나 저녁 쉼터로 날아가기 위해 흑두루미들은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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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습지에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곡식을 제공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개체수가 많다 보니 겨울철새들이 먹어치우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보통 먹이인 곡식을 줄 때 1t 내지 2t을 준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먹이를 마련한 재원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당장 눈앞의 손해보다 그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발생하는 무형의 부가가치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까치밥이라고 하여 감을 다 따지 않고 새 먹이로 남겨 주었다. 조상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을 함께 나누는 공생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외국의 경우에도 집 바깥에 먹이통을 두어 야생조류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버드 피딩(Bird feeding)’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 있다. 이런 미덕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계승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전통이 아닐까 싶다.


새 한 마리가 날기 위해서는 상당한 칼로리가 필요하다. 연구에 의하면 벌새가 2시간 동안 날려면 14,000칼로리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겨울철새가 그들의 본거지인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날아오는 동안 버텨야 하기 때문에 먹이를 비롯한 생태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겨울철새에게는 한겨울을 살아남기 위해서 일정량의 에너지원을 찾고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겨울이란 눈앞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포식자와 더불어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먹이가 풍부한 지역으로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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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소한 노력에 힘입어 조금씩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들이 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기적으로 낙곡이나 고구마 등을 제공하여 먹이활동을 돕는다. 한때 무분별하게 두루미를 잡아먹는 경우도 있었으나 요즘은 탐조 인구가 늘어나면서 스스로 자제하고 조심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탐조인이라면 탐조 과정에서 흰색이나 검은색의 옷을 피하거나 심한 냄새가 풍기는 화장품을 삼가는 등의 기본적인 예절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겨울, 우리를 찾아온 철새를 찾아 나서 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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