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를 향한 꿈, 신안 분재공원

by 산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역시 예상처럼 쉬운 일은 없다. 혼자 탐사를 나오면서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분재공원 애기동백을 보러 간 김에 동박새까지 봐야겠다고 내심 욕심을 냈던 게 문제였다. 아마 박형근 선생의 얘기가 없었더라면 동박새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았을 것이고 분재공원도 지나쳤을 것이다. 분재공원에 도착하여 입구를 통과하면서 사진으로만 봤던 동박새를 직접 눈앞에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상당히 짜릿했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을 안 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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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분재공원은 지금 겨울꽃 축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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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동백 숲길을 걸어가다 보니 새 몇 마리가 보인다. 언뜻 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동박새가 맞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오기 전에 혹시라도 식물 찍을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단렌즈로 교체했던 게 실수였다. 아, 단렌즈의 한계! 분명히 동박새가 맞을 텐데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안 나올 것이 뻔하다. 마음이 급해졌다. 부랴부랴 다시 차로 가서 카메라 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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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20분은 걸릴 만한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동박새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동박새만 찍을 수 있더라도 여기 온 보람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애기동백숲길을 걷다 보니 멀리 신안 앞바다가 보인다. 윤슬이 출렁이는 바다가 한결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 갑자기 카멜리아 전망대 생각이 났다. 그렇지 전망대에 올라가면 더 잘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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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전망대로 올라가니 탁 트인 광경이 일품이다. 이런 곳에 분재공원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도 대단하다. 누군가의 꿈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나저나 내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동박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정말 새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때부터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들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네들 또한 쉴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게 하필이면 지금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동박새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눈앞에는 예전에 보았던 눈이 맑은 동박새가 자꾸만 어른거렸다. 오지 않는 동박새를 아쉬워하며 어쩌면 오늘 동박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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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느덧 3시를 훌쩍 넘겼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갈 수가 없다.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조각공원과 온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처음 분재공원에 왔을 때도 습지와 애기동백만 봤었는데 이곳은 그때 보지 못했던 곳이다. 그때 한창 물이 올랐던 물매화와 용담은 보이지 않는다. 마른 풀만 가득한 그곳을 보고 있자니 지금이 겨울이라는 게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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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여행지에서 아쉬운 것은 시간이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집에서 마주하는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때로는 두 배의 속도로, 때로는 다섯 배의 속도로 흘러간다. 처음 출발할 때의 시간과 돌아올 때의 시간 속도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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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을 보니 규모가 제법 상당하다. 그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매화였다. 온실에는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올해 처음 본 매화였다. 아, 봄을 먼저 배달하는 매화를 잠시 잊고 살았다. 그렇지 이제 봄이 올 때도 되었지. 1월이긴 하지만 날씨로는 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이른 곳에서는 벌써 복수초와 노루귀가 나왔다는 소문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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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안은 채 입구까지 걸어왔으나 지금 이대로 돌아가면 다시 또 1년을 동백꽃과 동박새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번 딱 한 번만이라도 동박새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동박새를 보았던 곳으로 돌아갔건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동박새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텐데 조바심이 났다.


나무 한 그루나 꽃 몇 송이라면 감당할 수 있지만 5천 그루의 나무가 있다는 이 애기동백꽃밭에서 무슨 수로 동박새를 찾는단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끝이 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비워서인지 아까보다 한결 마음은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를 못 보는 일이야 슬픈 일이지만 이 너른 동백꽃밭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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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기약하지 말고 단정 짓지 말고 그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대로 보고 오자고. 그날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마음으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장면만 제대로 된 동박새 사진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게 새다. 그것은 신이 허락해야만 하는 세계이다.

강원도 철원에서 재두루미를 보고 순천만에서도 흑두루미를 풍성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맞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러기 떼가 앉아 있는 논바닥만 보고 올 뻔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만약 순천만까지 가서 흑두루미를 보지 못했더라면 실망감은 컸을 것이다. 때로 마음을 비우고 가서 뜻밖의 새와 만나는 일도 설레는 일이지만 기대했던 새와의 만남은 더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내려오다 보니 입구 근처 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앙상한 나무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어쩌자고 저 새는 칼바람을 맞으며 저 높은 곳에 앉아 있을까. 새집도 없는데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저 새도 한 생이 있을 것이다. 그 생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이 겨울을 무사히 이기고 봄이 오면 또 멋지게 날아다니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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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는 일은 우리의 결정 너머에 있다. 신은 우리에게 뜻밖의 멋진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매번 우리 마음에 흡족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버티며 살다 보면 선물을 주기도 한다. 매번 그렇지만 새를 보러 가는 일은 내가 가진 욕심의 일부를 덜어내게 만든다. 이번 신안 분재공원행은 새를 보러 갈 때, 왜 마음을 비워야 하는가를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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