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행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만경강행을 말씀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늦지 않게 쇠부엉이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만경강에 쇠부엉이가 나오니 한 번 가보라는 이야기는 마치 어느 산에 야생화가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어디에 쇠부엉이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가보았자 소용은 없을 게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가주신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도착하니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쇠부엉이를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물어보니 한 시간 전쯤에 제방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었단다. 그리고 사진을 보여주는데 선명한 이미지의 깨끗한 사진이었다. 사진으로나마 쇠부엉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니 전의가 불타올랐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쇠부엉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기다리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어 기다리는 와중에도 쇠부엉이는 보이지 않고 잿빛개구리매만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래도 기다리는 가운데 찾아든 손님이라 반갑기만 했다. 나에게 쇠부엉이를 보여주고 싶어 하던 박 선생은 계속 “보여주어야 하는데”를 연발했다. 그의 말처럼 새가 우리 마음대로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새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눈 내리는 날, 멋진 새들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으니 쇠부엉이야 다음에 보면 될 일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때로는 포기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내 마음은 “오늘 쇠부엉이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그때 박 선생이 한 마디 했다. 사그라지는 내 마음의 불씨를 키우는 말이었다.
20분만 더 기다렸다 갑시다. 딱 20분만.
새를 보는 이들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특히 원하는 새가 있을 때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 가야 할 시간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련은 이때 발생한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라는 유혹의 힘은 강렬하고 지독해서 혹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이때 선택을 잘못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다.
혹시 내가 떠나고 난 후에 보고 싶던 새가 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아쉬움이 떠나려는 탐조인의 발길을 돌려세운다. 대개의 경우, 그 아쉬움은 또 다른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도박장에서 시간과 돈을 탕진한 꾼처럼 어느새 비슷한 심정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러분이 예측한 바와 같다. 다음이 있지 않냐며 자신과 적당히 합의를 하며 씁쓸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찍은 영화의 마지막은 조금 달랐다.
우리가 기다리기로 했던 10분이 지났을까. 푸드덕거리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쇠부엉이였다. 이어 새는 우리 눈앞의 작은 풀숲에 들어가더니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던 쇠부엉이는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솟구쳐 올랐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지만 초점은 맞지 않았고 사진을 보고 난 후에는 아쉬움이 더 커졌다. 다행히 쇠부엉이는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도로를 가로질러 넘어가는 쇠부엉이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아니 달리다시피 하는 우리를 유혹하듯 쇠부엉이는 날다가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곤 했다. 이럴 때는 마음이 급하다고 달려가지 말고 새가 적응할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도 오늘 알았다. 빨리 보고 달려간 내 마음을 아는지 쇠부엉이는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훌쩍 솟아오르더니 우회하여 한참을 날아가버렸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새가 날아가는 동선을 따라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새가 그렇게 날아가버렸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사진 때문에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터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혹시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아쉬움을 읽었는지 박 선생은 다시 30분 더 시간을 연장하였다. 아마 도박사들이 판돈을 채우는 느낌이 이랬을 것이다. 마음 한편에 감사의 마음이 흘러넘쳤다.
아무렴. 30분이면 충분하고 말고. 쇠부엉이야 한 번만 기회를 더 주렴.
이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쇠부엉이가 아까 자리로 다시 한번 날아왔다. 같은 장소로 다시 날아왔다는 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쇠부엉이가 좋아하는 쥐가 사는 동굴이 있다거나 아니면 먹이를 저장해두었거나 하는 이유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하필 그 풀숲에 두 번이나 들락거렸는가.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풀숲에 있는 쇠부엉이가 보였다. 뿐만 아니라 새가 나에게 눈길을 돌리는 모습까지 찍을 수 있었다. 내게 허락한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좀 더 좋은 렌즈가 있었더라면.
이건 내 대사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쇠부엉이의 실체에 다가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 이번이 처음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자. 그럼 아주 잘했어!
이런 마음이었지만 셔터를 누리는 내 손까지도 그랬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이어 새는 다시 날아올랐다. 이번에 우리는 새를 쫓지 않았다. 이미 한 번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날아오른 자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저 풀숲 아래 내가 모르는 진실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 방법이 없다. 그저 상상에 나를 맡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박 선생은 다시 시간 연장을 선언했다.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다시 시간을 연장한다는 건 기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신은 내 편으로 돌아섰다. 그만큼 다시 쇠부엉이를 만날 시간이 길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다시 쇠부엉이를 만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오른쪽 풀숲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쇠부엉이가 다가왔다. 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날아가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쇠부엉이를 보기 위해 시한을 3번 연장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번 더 차에서 내렸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이제 떠날 시간이 된 셈이었다. 어차피 새가 다시 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 남겨진 하루의 마지막 운을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어쩌겠는가. 만경강은 넓고, 지금은 해가 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