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이자 탐조인인 박형근 선생과 통화하는 중이었다. 내일 날씨가 좋을 예정이니 쇠부엉이를 보러 가보라는 것이었다. 어제 다녀왔는데 원 없이 보고 왔다면서 나에게도 만경강행을 권했다. 만약 코로나가 지금처럼 기승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같이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가 5만 명대를 넘는 이 상황에서 만나는 건 서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요지는 조만간 쇠부엉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봐 두라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새를 보는 게 뭐라고, 쇠부엉이는 지금까지 한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벌써 이별해야 한다고, 이런 반문이 계속 내 머릿속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2월이 지나면서 한반도에서 겨울을 보냈던 철새들은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특히 올해는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철새들이 빨리 떠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들린다.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두르지 않으면 겨울철새를 볼 기회가 점점 없어질 것이다. 박 선생 이야기로는 겨울 철새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가기만 하면 보이던 새들이 순식간에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건 먹이를 찾아 떠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이리라.
새들의 이동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들이 1,7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오는 이유는 시베리아의 강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쪽이 먹을 것이 좀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도 문제지만 꽁꽁 언 먹이를 찾고 먹는 것도 보통 이상의 힘이 드는 일이다. 이제 겨울철새들은 한반도에서 한겨울을 편안하게 지냈으니 슬슬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새를 보는 건 야생화를 보는 것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은 다음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필 것을 알기 때문에 서운함의 강도가 약하다. 하지만 새는 다음해에 오리란 보장이 없다. 꽃이 지고난 후의 숲도 쓸쓸하기는 하지만 철새가 사라진 강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건 아마도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쓸쓸함 때문이리라.
겨우내 얼어있던 얼음이 따사로운 햇살에 녹으며 없어지듯이 새들도 우리 곁을 떠나간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만약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다 해도 불안하지 않다. 저녁에 가족이 돌아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공백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허무함은 감당하기 힘들다. 만경강과 동진강에 나가기만 해도 만날 수 있던 새들이 다 사라진 그 허전함을 나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새를 잃어버린 강을 마주할 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내 입장에서는 이제 새와 막 정을 붙인 셈인데 어느덧 겨울철새들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봄이 오는 건 분명 즐겁고 반가운 일이지만 겨울철새와의 이별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어차피 이별은 처음부터 예고된 수순이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시간이 날 때마다 최대한 겨울철새를 많이 보고 서운함이 덜하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 박형근 선생은 이 무렵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제 막 탐조 세계에 입문한 나도 서운한데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점점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별이 있어야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눈에서 반짝이는 것들은 가슴에 맺혀 기다림으로 남는다.
새가 떠난다
만경강을, 군산 앞바다를 채우던 새들이
식사 때가 되었다고 잠시 자리를 비우던 새들이
이제는 하나둘 떠난다
강이 싫어서가 아니라
바다가 싫증 나서가 아니라
갈 때가 되었다고 고향이 우리를 부른다며
이제는 모두 떠난다
먹이를 넘겨주던 강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넉넉하던 바다를 두고
다시 돌아오마고, 지금은 잠시 헤어질 뿐이라며
이제는 정말 떠난다
강은 서운함을 달래느라 등을 돌리고
바다도 아쉬움을 떨치느라 눈을 감지만
새는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이제는 다 떠난다
- 우리의 겨울, 고향 가는 날
이제 나도 슬슬 새와 이별할 준비를 해야겠다. 그들도 떠날 준비를 하듯이 나도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새들을 그만 놓아주어야겠다. 그리고 가끔 그들이 생각나고 허전할 때면 사진을 보며 강원도 철원, 경상도 주남저수지, 창녕 우포늪, 순천만 습지, 금강하구둑, 동진강, 만경강을 떠올리리라.
어떤 날에는 가끔 그들의 힘찬 날갯짓과 해질 무렵 윤슬로 눈부셨던 강과 바다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리라. 그리고 봄이 오면 그 허전한 빈자리를 다시 야생화와 나비들이 채울 것이다. 하지만 가을이 되고 그들이 올 때쯤이면 그 자리는 다시 철새들로 채워질 것을 믿는다. 지금은 겨울이고 이별은 아스라이 눈물겹지만 다시 또 계절은 지나가고 우리는 만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