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랜선여행

by 산들


그래도 2년 정도는 잘 참았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 여행을 참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부쩍 여행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들의 여행기를 검색했다가 지금쯤 거기는 어떨까 상상을 하곤 했다. 때로 항공권을 질렀다는 후기를 읽으며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내몰린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가 카페 유럽고고에서 랜선 여행 공지가 떴기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신청했다.


사실 나는 랜선 여행에 대해 무덤덤한 편이다. 하지만 이번은 왠지 달랐다. 아마 다녀왔던 곳을 다루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줌으로 하는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화면을 보고 해야 하는 일이다. 참가자들이 화면을 끄는 일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이나 댓글이 없는 경우도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맥이 빠진다. 그만큼 강의가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강의일수록 참가자들이 늦게 들어오거나 무덤덤한 반응이 대다수이다. 강의를 하는 이나 강의를 듣는 이 모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49.JPG 강의를 맡아준 박지훈 여행도슨트


오늘은 달랐다. 아마 전체 단톡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강의 시작 며칠 전부터 설렘이 가득한 기대가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떤 줌강의는 예약까지 했지만 나중에야 기억이 나서 끝날 무렵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이번은 달랐다. 한참 전에 사전예약을 해서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중간에 날짜를 다시 한 번 확인까지 했으니 말이다.


드디오 랜선 여행 떠나는 날. 오후에 부지런히 탐조여행을 다녀왔다. 쇠부엉이를 보러 만경강을 거쳐 큰고니를 보고, 마지막으로 금강하구둑에서 가창오리 군무를 보는 완벽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세 군데에서 다 보지 못했다. 쇠부엉이는 시간이 일러서, 큰고니는 낚시꾼들 때문에, 가창오리는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때라면 엄청 실망해서 허탈했을 텐데 돌아오는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혹시 그게 저녁에 있을 예정이었던 랜선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이었을까?


드디어 교육시간. 하필 우리나라 컬링 여자 1차전과 겹쳤다. 랜선 여행에 참가한 이들은 애국심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여행에 더 큰 매력을 느꼈으리라. 현지 분위기와 최근 여행의 필수품인 백신 패스까지. 아, 이런 건 정말 생소하고 따분한 일인데 그래도 시대를 무시할 수 없으니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나야 부스타샷까지 맞았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만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조금씩 일상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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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다녀온 이탈리아 일정이야기 잠시 나왔다. 저 정도면 살인적인 일정이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 미술관 기행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사람이 얼마나 미술품을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그림 한 점이라도 더 보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한 군데라도 더 갔으리라. 사랑할 누군가가 있고 기대할 무언가가 있는 한 그의 꿈은 멈출 수 없다. 이런 이와 함께 여행을 한다면 여행기간은 짧다 해도 추억은 오래 갈 것이다.


이탈리아를 다니면서 놀라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풍부한 미술품과 조각이다. 눈을 돌리면 사방이 예술품으로 넘쳐난다. 분명 그들의 피에는 예술가의 기질이 분명히 흐르고 있겠지만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면 그조차 헛된 독백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오늘 박지훈 도슨트가 추천한 이탈리아에서 반드시 가야 할 곳은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3곳이었다. 한 번 이상은 가본 곳이라서 낯설지 않고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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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좋은 이유는 한때 잠시나마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추억은 우리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으로 이끈다. 오늘도 그랬다. 이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미처 가지 못했던 곳들을 소개할 때 시선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오늘 소개 받은 곳 중 몇 군데는 마음에 간직해 두었다.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피렌체의 바르졸레 미술관.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 아쿠아 알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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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소개하는 사진 곳곳에 두달 전에 직접 찍었다는 동영상이 한 편의 광고처럼 흘러갔다. 그렇지. 우리는 미술관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잠시 붙박이로 서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보거나 보티첼로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봄>을 봐도 좋을 것이다. 같은 미술관을 다녀왔어도 알고 다녀오는 것과 모르고 다녀오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시인들은 우리가 가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고 비평가들은 우리가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주며 도슨트들은 여행의 숨겨진 비밀을 알려준다. 오늘도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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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했던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그 짧은 시간에 이탈리아 미술관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밀라노에, 베네치아에 함께 있었다. 보티첼리와 카라조바,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을 채웠던 화가들까지. 강의가 끝난 후 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다. 아마 언젠가 다시 이탈리아를 찾을 때, 오늘 강의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그때는 오늘 보았던 그림들이 조금은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 한편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이 강의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자신들의 꿈을

그림과 조각품으로 남긴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밤새워 그렸던 그림은

영혼을 쏟아부은 조각품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들도 가끔 사라지고 싶었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이 그들을 돌려세웠다


가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아련한 꿈으로 우리 곁에 남는다

- 이탈리아 랜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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