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탕과 맹탕 사이

by 산들


며칠 전, 하루에 세 군데를 가서 원하던 새를 하나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바로 쇠부엉이, 큰고니, 가창오리 군무였다. 처음 갔던 만경강에서는 쇠부엉이 대신에 매와 황새를 보았으니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아마도 쇠부엉이를 보았을 것이지만 가창오리 군무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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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에 벽성대 옆 저수지에 있던 큰고니가 떠올라서 잠깐 보고 가기로 했다. 입구로 가면서 보니 새가 한 마리도 없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보았더니 저수지 옆 길에 웬 차량이 두 대나 떡하니 들어서 있다. 바로 낚시꾼들이었다. 아차 싶었다. 낚시꾼들이 철새를 좋아하겠는가. 그들에게 철새는 낚시를 방해하는 골치 아픈 존재일 터였다. 아마도 어떤 식으로건 철새를 위협해서 몰아냈으리라. 문제는 이런 불쾌한 기억을 안고 떠난 철새들이 다시 돌아올까 싶었다. 이렇게 올해 큰고니와는 이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대로 사진 몇 장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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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도 마을 사람 누군가가 비슷한 사건을 벌여서 다음 해에 새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새들이 여기를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제주 탐조일기>라는 책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날아가는 새 사진을 찍기 위해 새를 일부러 쫓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날게 하기 위해 돌까지 던지더라는 내용을 보면서 경악했다. 그런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들은 환호하거나 탄성을 지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야말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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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운이 없으려고 했는지 마지막 기대를 안고 갔던 가창오리까지 배반을 해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는 우리에게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거기에 가면 새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한다. 그날 우리 역시 이전에 두 곳에서 원하던 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소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금강하구둑에 도착했을 때 새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바람이 예전보다 세지 않았다는 게 조금의 위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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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러 가는 일은 때로 기대 반 설렘 반, 그리고 나머지는 두려움 반을 안고 가는 것이다. 셋을 합치면 하나가 훌쩍 넘지만 실제로 탐조를 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세 가지 감정이 미묘하게 섞여 있음을 깨닫곤 한다. 기대와 설렘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이 환영할 만하지만 두려움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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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어디에 새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간다고 해서 꼭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심지어는 도착했을 때 “방금 떠났다!”라는 말을 듣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공허함은 나비를 연구하는 이도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 방금 귀한 나비를 보았다는 연락을 해서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흔적도 구경할 수 없다. 사기를 당한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게 자연의 이치이다. 시간이 그러하듯이 새와 나비처럼 날개를 가진 것들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그나마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 그 시간을 잠시 붙잡아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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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보러 가는 일은 공허한 허공에 글자를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 글을 새기는 주체는 새이고 나는 그저 그걸 지켜보면 되는 일이다. 이런 것은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조바심을 내거나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의 마음 한편에 추억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매번 같을 수는 없지만 어떤 추억은 조금 더 오래, 그리고 강렬하게 우리 마음에 남을 뿐이다. 조금씩 새를 알게 되면서 그런 마음이 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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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진을 찍기 위해 나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은 새를 보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일까. 아마도 후자가 많을 것이다. 다른 이보다 좀 더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수천만 원을 기꺼이 투자하는 이도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포라고 하는 렌즈를 보기만 해도 대개의 사람들은 ‘대단하다’ ‘전문가인가 보다’와 같은 선입견을 가진다. 그들은 일반인들의 이런 미묘한 시선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사진을 찍는 이들끼리도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흔히 말하는 장비병에 한 번 걸리면 약도 없다. 눈앞에 새로 나온 장비가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새 장비만 구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고, 그 사진 한 장이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장비를 사지 않으면 병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바꿔 보면 그런 장비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세상이 장비발로 해결될 수 있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다행히도 신은 우리에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지혜와 영감을 주셨다. 해질 무렵의 황혼은 아무리 뛰어난 장비로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앞으로 새를 볼 때마다 열악한 장비 탓을 하겠지만 그러면 어떠랴.


나는 믿는다.

내가 자연을 보며 느끼는 벅찬 감정이야말로 세상 어떤 뛰어난 장비로도 담아낼 수 없음을,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새가 날아가는 그 떨림과 마주했을 때 나는 우주의 신비를 엿보았음을, 내가 그 소중한 순간과 마주하며 감동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만이 누리는 특혜이자 살아 있음의 유일한 특권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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