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그리워하다 보면

by 산들

그리움을 탐하는 것

간절한 것을 보거나 달성하기 위해서는 때로 무리가 따른다. 자신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데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 욕심은 간절함에서 나온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보지 않고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면서도 무작정 달려가는 바보가 인간이다. 어느 상황에서는 절제를 해야 하는 데 하지 못하고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악마가 자신을 지배한다. 그 결말은 비극이다.


가끔 울릉도에서 명이나물을 따러 갔다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울릉도에서 명이나물은 일반인이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마을과 가까운 데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딸 수 없다. 난이도가 있거나 험준한 곳은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이런 곳은 등산 경험이 풍부하거나 숙련된 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하지만 초보나 체력이 달리는 이들이 명이나물만 보고 들어갔다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새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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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분재공원에서 동박새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다. 애기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 때문에 동박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던 중에 새 한 마리가 언뜻 보이는 데 동박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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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하필 가지고 있던 렌즈가 60mm 단렌즈였다는 사실이다. 혹시라도 야생화가 피었다면 찍을까 해서 중간에 렌즈를 바꿔 가지고 간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부랴부랴 차에 가서 렌즈를 바꿔 끼고 왔지만 동박새는 흔적조차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박새를 보았던 곳에서 다른 곳까지 몇 번을 오갔던 길을 되짚어 다녔으나 허탕이었다. 그곳에서 무려 2시간 넘게 기다렸으나 다시 동박새를 만날 수는 없었다.


다른 곳을 가기 위해 분재공원 출입구까지 갔다가 지금 아니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애기동백꽃숲길로 올라갔다. 동박새가 벌레도 먹지만 꽃 중에서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동백꽃이 오천 그루나 된다는 이곳에도 동박새는 어딘가 반드시 있을 터였다. 동백은 흐드러지게 피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마리만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그날 내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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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확대해보니 애기동백꽃 사이에 보일 듯 말 듯한 동박새 눈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새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기야 동박새가 동백꽃나무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나올리는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서 한참을 서성이지 않았던가. 마음 한편에 보지 못했다는 허전함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언제나 동박새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찍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주수목원에 혼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나무에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줌을 당겨서 보니 동박새가 아닌가. 심장이 마구 뛰었다. 동박새는 크기가 불과 12cm에 불과한 새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동박새를 찍는 중에 다른 한 마리가 더 날아와 앉았다. 이게 웬 횡재냐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나와 한참을 놀아주던 동박새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나는 못내 서운했다. 어떻게 만난 동박새인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 주변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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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사철나무에 동박새가 포로로 날아와 나무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다시 또 새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무속에서 한참을 놀던 동박새는 나무 아래의 흙에 내려앉더니 햇볕을 쬐면서 한참을 논다. 자세히 보니 입에 씨를 물고 있다. 사진작가들은 마음에 드는 동박새 사진을 얻기 위해 철사에 귤이나 과일을 꽂아 두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진도 멋지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동박새는 더 특별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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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날아가는 동박새를 따라 발길을 옮기니 이번에는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나와 놀아준다. 거리가 2m 남짓이었으니 이런 행운이 없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동박새가 날아간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참을 다시 기다렸으나 그때뿐이었다. 그 시간 이후에도 몇 장의 동박새 사진을 건졌다.


수목원을 돌아 나오는 순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신안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도 와주지 않더니 오늘은 우연히도 한참을 놀아주다니. 우리 지역 수목원에 동박새가 있다는 사실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내 눈앞에서 그렇게 오래 함께 해주었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마음을 비워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룬 영화를 보면 분명히 하산해야 할 시간인데도 정상 정복을 고집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지금 하산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그는 끝내 고집을 피운다. 결국 그는 내려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뻔한 결말이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스런 행동이다. 하지만 가끔 궁금하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감사하게 받아들였을까?


집에 와서 동박새 사진을 정리하는 데도 웃음이 절로 났다.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동박새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신안에서의 내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나는 나중에 다시 동박새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났던 동박새의 느낌만큼은 아닐 거라는 걸 안다. 그 생생한 느낌이 내 가슴 한편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동박새를 만난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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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동박새, 이러니 사진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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