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는 텃새와 철새로 나뉜다. 지역에서 사는 새를 텃새라고 부르며,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가거나 잠시 머무는 새를 철새라고 한다. 텃새는 어떤 지역에서 일년 동안 떠나지 않고 살면서 번식도 하는 조류를 말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참새, 까마귀, 까치, 박새, 꿩, 흰뺨검둥오리, 올빼미 등이 여기에 속한다. 텃새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이름이 친숙한 새들이다. 반면에 철새는 생소한 경우가 많다.
흰뺨검둥오리 암수
자신이 사는 동네가 편한 것은 새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동네에서는 어디에 먹이가 있고, 어디가 위험한지를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미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 대한 지리적인 특성을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먹이를 구하는 일 또한 쉽다. 새들이 이처럼 편하고 익숙한 자신의 공간을 등지고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는 일은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내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또한, 철새들은 월동을 위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안전을 보장받거나 편안함을 기대할 수도 없다. 중간에 천적에게 사냥당하거나 질병이나 전염병 등에 의해 희생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철새들은 때가 오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모여 이동한다. 그것은 철새들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필수적인 연례 의식이자 필사적인 생존 투쟁이다. 철새의 이동은 기후의 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살아 남기 위한 본능이자 치열한 삶의 웅장한 서사시이다.
철새는 계절에 따라 여름철새와 겨울철새로 구분할 수 있다. 여름철새는 봄부터 초여름 무렵 월동지에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여 교미하고 산란하며 새끼를 키우고 가을에 다시 온난한 월동지로 가는 철새를 말한다. 겨울철새는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먹기 위해 번식지를 떠나 안전한 월동지로 이동해서 계절을 난다. 여름철새와 겨울철새의 공통점은 추위를 피해서 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월동지까지 오는 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머나먼 여정만큼이나 이동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월동지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낙오하거나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주남저수지 재두루미
겨울철새 중 독수리는 3월에 몽골에서 둥지를 틀고 번식하다가 8~9월 이동을 시작해 한국에서 월동한다. 경남은 한국을 찾는 독수리의 약 80%가 월동을 나는 지역이다. 한국을 찾는 독수리 1500여 마리 중 800여 마리가 고성에서 겨울을 날 정도로 고성은 세계적인 월동지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먹이 서열에서 밀린 어린 개체가 많다. 힘이 센 독수리들은 몽골을 떠나지 않아도 겨울을 버틸 수 있다. 어린 독수리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새들은 겨울 추위를 피해 시베리아에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머물다가 봄에 다시 고향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일본이나 대만, 홍콩으로 가기도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새를 추가할 수 있다. 흔히 시베리아나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가는 중에 잠시 우리나라를 들러가는 새를 나그네새라고 한다. 나그네새는 봄과 가을에 북상 또는 남하하며 우리나라를 거쳐간다. 도요나 물떼새 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철새가 텃새화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후투티, 백로, 황새, 오리, 기러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 오는 철새들은 동남아나 호주에서 오기도 한다. 철새는 보통의 경우에는 짧은 기간을 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동하는 방식으로 월동지까지 이동한다. 그러나 큰뒷부리도요처럼 북위도 툰드라 지역의 번식지에서 뉴질랜드 월동지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종도 있다. 큰뒷부리도요는 열흘 남짓한 기간에 12,000km에 가까운 거리를 쉬지 않고 날기도 한다. 이처럼 단기간에 오랜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새들은 그동안 비축한 지방을 에너지로 변환하고 신체 장기를 최소화시키면서 긴 여정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새들의 몸무게는 처음 출발 당시보다 50% 가까이 줄기도 한다.
실제로 이동경로를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겨울철새가 바다를 건널 거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동을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단지 새가 이동을 시작하기 전, 발에 끼운 밴드로 철새의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위성 추적기를 부착한 새의 이동경로를 본격적으로 추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툰드라 지역에서 출발한 큰뒷부리도요가 태평양을 쉬지 않고 날아서 최종 목적지인 뉴질랜드까지 날아간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도요새들이 중간 기착지에서 충분히 먹이를 먹어 지방을 얼마나 비축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데 중간 기착지에서 이게 불가능하다면 끝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철새가 개발에 의해 더 이상 관찰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5,400㎞를 날아 황해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베리아 북부 툰드라로 날아가 번식하는 붉은어깨도요는 새만금 개발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한때 수만 마리까지 관찰할 수 있던 붉은어깨도요는 새만금이 개발되면서 전 세계 개체수의 20%가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홍섭, 극한 여행자 큰뒷부리도요, 200시간 논스톱 비행, 한겨레, 2012. 9.21.).
3월 봄햇살이 따사로움을 불러오면 한반도에서 겨울을 지낸 겨울 철새들은 다시 고향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2월부터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며 3월이면 상당수의 철새들이 떠난다. 이 무렵이면 주남저수지와 순천만 습지에서 겨울을 보낸 두루미도 중간 기착지인 서산 천수만에 모인다.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몸집을 불리는 것이다. 그 모습은 본격적인 대장정을 나서기 전에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비장하다. 그들 역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살아남을지 아니면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또 머나먼 길을 나설 것이다. 함께 출발했다 할지라도 가는 도중에 일부는 낙오하고 또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그것은 그들에게 그리고 겨울 철새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몸속에 흐르던 DNA일 수도 있지만 자연이 그들에게 숙명적으로 부여한 임무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순례의 길을 나서며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익힌다. 그의 조상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