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 새만큼은 꼭 보고 싶은 새가 있다. 보지 못한 새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미 본 새 가운데도 그런 새가 있다. 그런 새를 만나면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눈앞에 그런 새가 있으면 심장은 터질 듯하고 정신은 아득해진다. 그렇지만 그런 새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새를 보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이유이다.
나와 탐조를 많이 나가는 박형근 선생에게 굴뚝새는 그런 존재이다. 그가 전주 인근에서 굴뚝새를 본 것은 하필이면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차로 달려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마음을 졸이며 돌아왔을 때 다행히도 새는 그 자리에 있었다.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든 굴뚝새
하지만 이번에는 카메라가 문제였다. 어찌 된 일인지 핀이 맞지 않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새는 날아가버렸다.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열 번도 넘게 이야기를 했다 하니 그 서운함을 짐작할 만하다. 그 아쉬움이 진해서인지 그는 아직도 그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미 사진을 지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도 몇 차례 그 무용담을 들었다. 그는 언젠가 다시 굴뚝새를 만나 마음에 흡족한 사진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아신다.
나 역시 동박새를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동박새와 이별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 몇 차례 동박새를 만나면서 서운함은 줄어들었지만 만약 나 역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했더라면 한참이나 아쉬울 뻔했다. 동박새와 마주한 날, 그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앞에서 동박새가 어른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보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도 크지만 보고 난 후의 감동도 그에 못지않게 크게 와닿는다는 걸 느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새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나비를 만나 사진을 찍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원도 어느 산에서 알락그늘나비를 만났을 때였다. 바로 눈앞에서 나비를 만났건만 나비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간신히 나비 옆모습만 찍을 수 있었다. 나비는 도무지 사진 포즈를 취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알락그늘나비
그러다가 나비는 훌쩍 날아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행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여서 내 마음은 급해졌다. 나비는 다시 내려오지 않고 시간은 가는 사이에 나는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몇 번이나 그 자리를 쳐다보았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그 빈자리만 사진으로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나 아쉬움이 강하면 그 빈자리를 사진으로 찍었겠는가.
그렇다고 한 번 보았다고 충분히 만족하는 게 아니다. 작년에 보았던 복수초와 산자고를 올해 또 보기 위해 꽃소식만을 기다린다. 작년은 작년대로 올해는 올해 나름대로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우리가 같은 장소를 몇 번씩 가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책이라도 20대, 40대, 60대에 읽는 느낌이 달라지지 않던가. 어떤 책은 20대에는 별로였으나 나중에 접한 후에 감탄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 야생화나 나비, 그리고 새를 만나는 일은 매번 새롭고 설레는 일이다.
자신이 평생을 기다려 보고 싶어 하던 나비나 새를 만난 것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못 만났더라면 덜 아쉬웠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살짝 아는 게 더 무섭다. 그만큼 그 강렬한 인상을 사진으로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서운함이 가슴을 치게 한다. 꿈에 그리던 야생화나 나비, 그리고 새를 만나는 일은 비록 첫사랑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에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은 강렬하고 치명적이다.
상모솔새
낚시꾼들은 잡은 고기보다 놓친 고기에 대한 미련이 크다고 한다. 놓친 고기, 즉 사라진 실체에 대한 미련이 큰 법이다. 설령 그 고기가 크기가 별로 크지 않다고 해도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눈앞에서 놓쳤다는 사실이 땅을 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고 마침내 실천으로 이어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가서 새를 만나지 못하고 오는 날은 우울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자리를 뜨고 난 후에 꼭 새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발길을 붙잡는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은 늘 아쉬움의 연속이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다음에 대한 기대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음에 새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다음이 있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다음 만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