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따라 걷다가

by 산들


이름이 다소 생소한 오산(鰲山)은 전남 구례에 있는 해발 531m의 산이다. 사람들에게는 사성암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남원)에는 “오산은 유곡(楡谷)의 남쪽 15리에 있다. 꼭대기에 바위가 하나 있고 바위에는 빈틈이 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깊다. 전하는 말에, 도선(道詵)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산을 상징하는 사성암은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구례읍에서 2km 남쪽 죽마리 오산 꼭대기에 위치하는 암자로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렸다 한다. 나는 원효, 진각, 의상, 도선국사의 4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四聖)암이라 부른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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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은 구례 10경의 하나로도 꼽힐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아는 이만이 보물처럼 숨겨두었던 사성암은 드라마 <토지>와 <추노>가 인기를 끌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한다. 한 번 소문난 곳은 입소문을 타고 다시 또 다른 이들을 불러들이는 파급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광풍처럼 몰아친 끝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런 곳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유행과 비슷하며 그 유행은 한때 인기를 끄는 바람처럼 한시적이다.


주말, 사성암으로 가는 초입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입구까지 부지런히 미니버스가 오가고 있었다. 아마도 아래 어디쯤에서 걷기 힘든 이를 위해 절에서 편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오는 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관광객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코로나 3년째, 갈 길을 잃고 방황하던 이들이 정부의 거리 완화 정책에 힘입어 일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느낌이었다. 하기야 이런 날씨에 집에만 있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 이런 날씨에 닫힌 공간에만 있기에는 봄햇살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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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파른 느낌이었다. 통상적인 길이라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사람을 압도하는 경사였다. 감당하기 힘든 경사도는 오르는 내내 고행을 떠나는 순례자의 길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필이면 다른 곳을 두고 이 가파른 길을 택해 암자를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통의 무게가 커지면 그에 따라 영혼도 맑아진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진리에 닿기 위해 가면서 너무 편하면 그 깨달음의 강도가 옅어진다고 느꼈을까.


그리 긴 길은 아니었는데 가파른 길이어서인지 잠시 걸었을 뿐인데도 피곤함이 밀려왔다. 살짝 지칠 무렵, 드디어 말로만 듣던 사성암을 만날 수 있었다. 암벽을 배경으로 우뚝 선 암자는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앞에 세운 사천왕도 한눈에 보기에도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는 않아 보였다. 동행한 전정일 선생은 이전 사성암에 얽힌 추억을 아련하게 말해주었다. 예전에는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이 참 정겨운 돌담이었다고,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느냐는 말끝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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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성암을 만났을 때는 저렇게 우뚝 선 건물 대신에 마애불을 직접 뵐 수 있었다고,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연신했다. 때로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아마 이 마애불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처음 이 마애불을 떠올린 이는 이름 없는 이들이 아무 때나 오가며 부처님께 소원을 빌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리라. 그래서 이곳저곳을 살피고, 고르고 고르다가 이 터를 잡아 온 마음을 다해 바위에 약사여래를 모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자유로운 약사여래를 이렇게 답답한 방에 가두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산다.


나는 눈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건물과 잘 닦여진 길을 지우고 그 옛날 돌담길을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소담한 돌담길과 은은한 마애불의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간절함을 담고 이 길을 올랐을 것이다. 가파른 길을 걸어온 터라 땀을 닦으며 마음을 다스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오른 길에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만나고 자신이 간직해온 소원을 마음을 다해서 고했으리라. 그 절절한 마음이 차를 타고 관광하듯 오는 마음과 어찌 같을까.


이미 사성암 유리광전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유리광전 이전에는 약사전이었으나 보수를 거쳐 유리광전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일부는 전각 밖에서 구경을 하기도 했지만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안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대한 유리벽 너머에 계신 모습으로는 그분을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절에서는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유리벽과 전각을 설치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을 찾는 이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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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광전 모퉁이를 돌자 눈부신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여래불은 고개를 돌리면 화사하게 핀 진달래를 보며 웃으시지 않았을까. 왼쪽에는 담쟁이덩굴이 한 폭의 거대한 그림처럼 풍미를 근사하게 풍기고 있었다. 가을이면 이 덩굴도 붉게 물들어 여래불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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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물이 날 뻔했다. 아마 유리광전이 없을 때에는 여래불은 눈앞에 탁 트인 구례 구만리 들판을 마주하셨을 것이다.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을 찾는 가슴 허한 이들에게도 넉넉한 미소를 나누어주셨으리라. 비가 오면 비를 그대로 맞고 눈이 오면 눈을 가슴에 품으며 바람을 벗 삼아 오랜 세월 지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갑갑하고 재미없으실까. 불현듯 그 멋진 풍경을 아침저녁으로 맛보셨을 마애여래불이 지금은 그 답답한 방에 갇혀 계시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례 오산 사성암에는

마애불 부처님이 계시는데요.

예전에는 저녁이면

하루를 내려놓고 웃음 지으셨다는데

요즘은 웃음을 잃으셨다네요

해마다 봄철이면

부처님 말씀에 취한 진달래

오른쪽에 화사하게 피고

왼쪽의 담쟁이 덩굴도

부처님 따라 같이 웃었다는데요

지금은 유리광전 누각에 딱 갇히셔서

그 좋아하는 진달래도 못 보시고

외출도 잊으신 채로

웃음도 잃고 그저 그대로 계신답니다

찾은 이들 마음 아리게

- 미소 잃은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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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려오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절에서 사선대제가 열렸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벚꽃 구경하러 온 이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 오시는 분들 소원을 하나씩 받아가라는 플래카드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원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게 해준다는 바위이다. 마침 산왕전 앞에서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사람들이

소원을 품고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와서는

부처님을 마주한 순간

그 시름을 탁 내려놓고 내려갑니다

누구나 시름 하나쯤은 달고 사는 게

우리네 세상의 흔한 이야기지만

덕분에 무거운 짐 하나를 이리 덜었으니

소원 하나를 얻은 셈입니다

낯설고 물선 구례땅까지 와서

오래 끄라리고 온

짐 하나를 덜고 간 사람들 얼굴이

양지꽃처럼 환하게 빛납니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두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속으로 성큼 발을 옮깁니다

- 구례 사성암 가는 길


이 가파른 길을 걸어올 때, 사람들은 그들이 끄라리고 온 걱정과 시름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그들은 이 지독한 경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을 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으리라. 대부분의 이들은 사성암으로 향하는 짧은 찰나의 순간이 세속의 고민에서 잠시 해방되는 길이었음을 모르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쓴 누군가는 소원바위를 떠올리며 그걸 간파한 모양이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과 기쁨을 살아내며 ‘지금’을 이겨내는지도 모른다. 눈이 밝은 이는 주변에서 지혜의 힘을 빌려 하루를 웃으며 살고 외로운 이는 남이 내면 손을 거절하고 울음으로 채운다. 슬기로운 이는 견디기 힘든 순간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지혜롭지 못한 이는 그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천국을 누군가는 지옥을 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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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광전 옆에 위치한 53불전을 지나면 소원바위와 산왕전이 나온다. 모퉁이를 돌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날 법한 길을 지나면 도선국사가 머물렀다는 도선굴이 나온다. 배가 많이 나온 이라면 통과하기 버거울 만큼 좁은 길이다. 두 사람이 같이 건널 수 없으니 한 사람은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오산에서는 길도 사람들 겸손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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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비좁은 도선굴 안에는 한 줄기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만약 도선국사가 이 굴에서 참선수행을 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익히 알려져 있듯이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선승이다. 일설에는 도선이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전남에서 활동했으니 이 지역에서 수도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잠시나마 세속의 땅을 벗어나 금단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아마 이곳을 찾은 이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자꾸만 전정일 선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이전 그대로의 사성암과 만났더라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마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완주 화암사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과거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과거가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그 추억 속에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느 순간을 공유했고, 충분히 느끼고 공감했다. 그 결과 나는 과거의 한 부분을 내 안으로 끌어올 수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의 일부로 다가왔다.


오늘 내가 사성암을 만난 것처럼 나중에 다시 또 사성암을 만나면 이 추억을 소환하리라. 그날 그 아름다운 시절에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찾았던 이 작은 암자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서리게 눈부셨던 봄날을 떠올릴 것이다. 앞으로 진달래를 볼 때마다 오산을 구석구석 환하게 밝혔던 진달래 등불이 생각날 것이고, 흰진달래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 그리워질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흰진달래를 알현할 생각에 가슴 설레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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