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봄편지를 받다

by 산들

봄이 온다. 비가 온다.

처음에는 부슬부슬 내리더니 시간이 갈수록 내리는 비의 색이 좀 더 짙어졌다. 마침 가을에 있을 판각 전시회 건으로 완판본문화관에 들러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챙겨 오는 길이었다. 이번 테마는 <주해천자문>이다. 얼핏 보기에도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따라 비는 오후부터 오락가락했지만 완판본을 나올 때만 해도 하늘은 그저 어둡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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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관에서 판각 연습을 하고 있으니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나는 잠시 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와 달리 세상이 비에 젖어 흥건해 있었다. 한옥마을의 서화관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이제 막 파릇파릇하게 솟아오르는 새순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봄이라는 특유의 시간대가 겨우내 긴장해 있던 내 경계를 누그러뜨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1년을 통틀어 지금 이맘때야말로 세상이 연초록으로 환하게 빛나는 시간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세상은 곰살궂게 출렁거린다. 만약 시간을 잡아둘 수 있다면 그 여린 잎이 발산하는 행복한 풍경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순간은 짧고 강렬하다. 그렇기에 봄밤은 더 아련한 마음이 드는 걸 게다.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코로나에 우울한 대선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어두웠던 마음이 잠시나마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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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어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노라니 벚꽃이 걱정된다. 아까 은주 샘이 보내준 사진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벚꽃이 흐드러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비가 오곤 했다. 어느 해는 일상에 바빠 벚꽃을 보러 가야겠다 말만 되뇌다 보면 비 소식이 들렸다. 그것도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아니라 땅이 흠뻑 젖을 만큼의 굵은 비였다. 그렇게 바닥에 꽃비가 흥건해지면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곤 했다.


요즘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는 이를 보기는 힘들다. 영화 <클래식>처럼 옷을 둘러쓰고 달려가는 이를 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단 나서기 전에 우산부터 꺼내 들지 않으면 감히 나설 생각을 못한다. 이제는 맨몸으로 비를 맞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런 사소한 일을 겪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몸을 사리는 일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이런 봄밤이면 그윽한 커피 한 잔이 특별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 다른 때도 그렇지만 비 오는 한옥마을은 더 운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빗방울은 강해지고 사방은 어둠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유럽에서는 이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어둠 때문에 경계가 흐려져서 자신이 기르던 개인지 아니면 나를 해치러 온 늑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시간대라는 의미이다.


방금 전, 내가 통화를 나누었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을 동반하고 있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대요. 그저 목소리만 듣는 걸로도 위안이 된다네요.”


이럴 때 누군가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위로받고 싶을 때, 그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무작정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상대방의 간절함이 그를 거쳐 무심한 내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던 탓일까? 전화를 끊고 나서도 가슴 한편이 먹먹해왔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왜 그 사람이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상대방의 간절한 울림을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을 것이다. 때로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가 드린 기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리라.


문득 그가 부러워졌다. 이 봄밤, 누군가는 막걸리에 취해 있을 시간에 내리는 비와 벗해서 마냥 길을 걷고 있다는 그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마 온몸으로 봄이 오는 소리를 마주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생명의 노래에 어울려 함께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까?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집에 도착한 후, 그가 보내준 시 한 편이 비를 타고 도착했다.

복사꽃 떨구며 비가 내린다

버스 타는 일도 잊고

빗방울에 실려 가는

꽃잎 따라가는데

전화가 온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차 한 잔 할까?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


나를 그리워해서

목소리만으로 위로가 되어서

내가 위로를 받는


-보고 싶어요

나도 그리워요-

그녀는 지금

공연을 준비하며 노래 연습을 하고

나는

빗방울 몇 알로 싱글싱글한

작은 개미자리 옆에서

우산 밀쳐 놓고

목마른 코딱지 풀꽃처럼 비를 맞는다.

- 그녀


<그녀>라는 제목의 시는 오늘 그녀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었다. 우산을 밀쳐 두고 풀꽃을 닮은 그가 비를 맞는 장면이 그려졌다. 비 내리는 봄밤이 들려준 작은 떨림을 그가 잊지 않고, 그 설렘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이어가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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