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색나비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왕오색나비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나비이기 때문에 강원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나비이다. 분포지역을 보면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강원도에서밖에 본 적이 없다. 작년에 알을 받아 키운 나비를 보았을 때도 그 현란한 색에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비를 처음 시작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을 내보았음직한 나비이다. 그만큼 색깔이 화려하고 현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때 이후 1년만에 가정리에서 다시 왕오색나비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왕오색나비는 길가 동물의 똥 위에 앉아서 정신없이 대롱을 내밀고 있었다. 나비는 암모니아에 약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나비는 상당히 민감하다. 그러나 똥 위에 있을 때만큼은 다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옆에 다가간 것도 모르고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동물의 사체나 과일 썩은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으나 대개 비슷했다. 만약 이럴 때 천적이라도 등장하면 그대로 먹잇감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왕오색나비는 일단 색감도 근사하지만 나를 때 내는 쉭쉭 하는 날개소리가 현란하다. 아마 텃세를 부리듯이 자신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위협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나비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주변을 나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왕오색나비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대개의 나비들은 주변의 소리나 움직임에 민감하지만 이 왕오색나비만큼은 자신이 주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네발나비과에 속하는 왕오색나비는 날개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앞날개의 길이 수컷 47~52mm, 암컷 52~61mm에 달할 만큼 날개가 크다. 일단 날개가 큰 만큼 나르는 속도나 높이가 다른 나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빠르게 속도감 있게 다가오는 나비는 여럿이지만 이 나비처럼 덩치가 큰 나비가 다가올 때는 부담스럽다. 왕오색나비가 순식간에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면 움찔할 정도이다. 마치 새가 날아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른 나비와 달리 옆면은 쉽게 찍을 수 있었으나 좀처럼 윗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나비는 옆면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나비도 있는데 이 녀석은 너무 쉽게 보여준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가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데 높은 위치로 올라간 왕오색나비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야속할 정도로 먼 거리에 너무도 느긋하고 편안하게 있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샘이 나기도 한다.
이전에 가정리에서도 왕오색나비를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좀처럼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날아가버리는 통에 윗면을 찍을 수 없었다. 이동하기 직전에 한 번의 기회가 있기는 했다. 마침 일행이 사진을 찍고 있기에 잠시 기다렸다 찍으려 했더니만 그냥 휙 날아가버렸다. 나는 딱 두 장 찍었을 뿐이다. 허탈하기 짝이 없다.
나비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이 있다. 나비 사진을 찍기 좋은 자리를 독점하고 오래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멋진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십 장을 찍는 건 기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음 사람이 찍으려 하면 바로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선 사람이야 좋은 위치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어서 기분이 좋겠지만 뒤에 남겨진 사람은 허탈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다섯 장씩만 찍기로 정했던 적도 있다.
다른 사람은 왕오색나비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나비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더군다나 야생에서 만나는 나비인데 그냥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안 보았으면 모르겠지만 보고 나니 더 욕심이 난다. 나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차에 타서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는데 마침 일행이 다른 곳을 하나 더 갔다가 가자고 한다. 나야 감사하지!
도착해서 한번 훑어보더니 평소라면 나비가 많이 발생했을 시기이나 별로 보이지 않는다며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일행에게 조금만 더 탐사해보겠다고 말한 후,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왕오색나비 한 마리가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에 왕오색나비와 은판나비가 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 운이 좋으면 내가 그토록 찍고 싶어 하던 왕오색나비 윗면 사진도 건질 것이다.
오솔길을 걷다 돌아와 보니 암벽 군데군데 보석처럼 왕오색나비가 박혀 있다. 내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바위 쪽을 보니 왕오색나비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댔다. 하지만 너무 멀다. 아쉬운 대로 밑면을 찍었으나 여전히 윗면 사진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그래도 아랫면을 찍었으나 나머지 한쪽은 포기해야 하나 하는 순간에 나비 한 마리가 바로 내 앞에 앉는다. 그러더니 날개를 조금씩 벌리는 게 아닌가.
이럴 때 조금만 기다리면 날개를 펴는 경우가 많다. 나비는 날개를 폈다가 순식간에 접기 때문에 순간을 포착하는 게 관건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맙게도 날개를 펴준다. 드디어 웃으며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비를 자세히 보니 꼬리 부분이 잘려 나가 있다. 누군가의 습격이거나 나뭇가지에 걸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안도가 아쉬움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멀리 세워둔 차에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에게 직접 연락은 하지 않았으나 이제 가야 한다는 신호인 셈이다. 이쯤 되면 시간에 쫓기기보다는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싶어진다. 만약 걸어갈 수 있거나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이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비의 경우, 식물과 달리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쉽지 않다. 만약 카메라 렌즈가 닿기 어려운 거리에 있을 경우라면 더 그렇다. 어떤 때는 나무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눈앞에서 팔랑거리다가 숲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럴 때 사진을 찍지 못했을 경우, 일행과 함께 있으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나마 나비를 찍는 사람은 처지를 알기 때문에 조금은 나은 편이다.
어제 70~300mm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니 건질 게 별로 없었다. 육안이나 스마트폰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여도 막상 확대를 하고 보면 사진이 영 아니었다. 역시 조금은 불편해도 60mm 렌즈가 주는 선명도를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오늘은 60mm를 장착하고 왔으나 이조차 닿을 수 없는 먼 거리라면 답이 없다.
한번 왕오색나비 윗면을 찍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나비의 윗면을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욕심을 비우거나 아예 포기하고 기다리거나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내가 살면서 왕오색나비를 몇 번이나 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일행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 사진에 담지 않으면 또 얼마나 후회할까 싶기도 했다. 후회는 아쉬움을 낳고 미련으로 이어진다. 놓친 게 더 커보인다고 찍지 못한 사진은 평생 후회로 남기도 한다. 결국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도 내 마음과 달리 나비가 도와주어야 한다. 나비를 좋아하는 이라면 먼저 기다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서도 기다려야 하지만 나비를 만나는 일은 더 오랜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왕오색나비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위에 앉아서 위쪽으로만 날아다닌다.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그냥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생길 때였다. 왕오색나비 한 마리가 바닥에 앉아서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내 앞에서 딱 찍기 좋은 자세를 취해 주었다. 나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속으로는 이제는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다가왔다.
왕오색나비를 찍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다리는 일행을 생각해서 뛰어 올라갔다. 만약 이날 왕오색나비 윗면을 찍지 못했더라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것이다. 언젠가는 찍었겠지만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아마도 내게는 왕오색나비와의 인연을 맺은 그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비를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식의 경험이 몇 번씩은 경험이 있다. 눈앞에서 휙 하고 사라진 나비가 10년이 지난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면 말 다했지 뭔가. 그래도 오늘 왕오색나비와 은판나비 사진은 내게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한참 마음고생하고 기다려서 얻은 사진이니만큼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음에 보자, 사랑스러운 가정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