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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ug 09. 2022

예술가의 꿈이 열리는 팔복예술공장

          

예술과 공장의 조합이라니 한국에서 이런 상상은 하기가 쉽지 않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예술공장이라니 예전의 관념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비교적 보수적이고 완고하다는 도시인 전주에서 이런 생각이 통할 리 없다. 하지만 내 선입견은 보기 좋게 깨졌고 팔복예술공장은 엄연히 현실에서 존재한다.


                                                                                          

사실 팔복예술공장의 유래는 문을 닫은 공장((구)썬전자, 쏘렉스 자리)에서 시작한다. 70년대와 80년대는 라디오의 전성시대이자 카세트테이프의 시대였다. 그때는 낭만의 시대였으며 사람들의 감성이 풍부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영상에 대한 갈급함이 없던 시대인지라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고 충분히 감동했다. 그러나 대개의 유행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관심사도 쉽게 변한다. 유사한 일로 전 세계 1위의 필름회사를 고수하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의 흐름을 읽지 못해 문을 닫은 사례도 있다. 그렇게 한때 잘 나가던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시대의 대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는다.    

       


CD와 디지털 음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카세트테이프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냉정하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테이프에 매달리지 않았고, 음악사와 길거리를 메웠던 테이프를 빠르게 정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닫힌 공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시재생의 물결을 타고 이 공장터는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문체부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공장 건물의 뼈대를 유지한 상태에서 작가들의 활동 무대, 그리고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오늘날 팔복예술공장의 시발점이었다.    



팔복예술공장은 작가 레지던스 공간과 전시실,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한 행정지원부서, 예술 문화교육 공간, 그리고 카페 등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현재 (재)전주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팔복예술공장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꿈꾸는 예술놀이터”를 꿈꾼다. 특히, 카페는 웬만한 건물 한 동을 다 차지한 느낌이 들 정도로 크고 널찍하다. 카페에 들어서면 엄청난 크기의 인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사진 한 컷을 찍고 싶은 유혹이 저절로 생긴다. 카페 한 편에는 북 카페를 연상시킬 정도로 분위기 있는 책이 한가득이다. 차를 마시는 틈틈이 책구경도 하다 보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지금 팔복예술공장 A단지 2층 전시실에서는 전북판화협회 30주년을 기념하여 <전북판화 30년-다시, 판화 Restart, Print>전(7. 1.~8. 21.)이 열리고 있다. 전북판회회원들의 작품 활동 30주년 행사이니만큼 참여작품 수나 참여작가의 규모도 상당하다. 30주년 동안 켜켜이 쌓인 작품에서는 전북판화협회 회원작가들이 걸어온 내력과 작품의 깊이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넓은 전시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은 양에서도 그렇지만 질에서도 압도적이다. 협회 초기부터 활동했던 원로작가들부터 신진작가의 실험적인 판화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80년대 민주화 항재의 상징이었던 판화는 당시 집회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대의 표상이었으며 걸개그림이나 시집 표지의 소재로도 즐겨 사용되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회상을 떠올릴 판회들이 벽면 한 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참여작가 박마리아 씨는 “쿠팡과 같은 배달의 풍요로움 속에 일상의 공허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배달 이후 버려진 박스를 보면서 공허한 현대인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현대의 우리들은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작 생활 이면에는 쓸쓸함과 허전함이 자리잡음으로써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으니까요.”라고 작품 창작 의도를 밝힌 바 있다.


                                                                                                                                                      

판화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 건물 밖으로 나오면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이 우리를 반긴다. 요즘 한국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로 등장한 게 바로 어린이 그림책이다. 팔복 예술공장에는 그림책 도서관이 있다. 비록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볼로냐 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처럼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상을 받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그램책에 대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는 우리나라의 형편을 고려한다면 전국 곳곳에 이런 도서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래야 지금 이 시간에도 외롭고 힘들게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와 출판사들이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가가 버티기 힘든 나라이다. 작가가 작품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작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작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에 전주의 꽃심 도서관에서 일본의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 선생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평가지만 작가를 진정한 예술가로 예우하는 사회 분위기 또한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현재 팔복 예술공장은 유아,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팔복 야호 예술놀이터를 비롯하여 팔복예술대학, 작가를 위한 입주와 지원 프로그램,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팔복예술공장은 곳곳에서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장소와 상징 조형물들이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팔복예술공장 어디나 카메라를 들이대면 독특하게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철, 마땅히 갈 곳 없는 이들이라면 마실길 나서듯이 팔복예술공장으로 나서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도심 속 피서를 떠올리는 이들이라면 팔복예술공장은 어떨까? 이곳을 찾은 이라면 그 규모에 놀라고, 그 풍성함에 다시 한번 놀랄 것이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는 팔복예술공장. 오늘은 당신이 각박한 삶에 지쳐 한편으로 잠시 밀쳐두었던 예술의 꿈을 따라나서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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