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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19. 2022

삶에 위로가 필요할 때

코로나의 후유증은 지독했다.

설마 내가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막상 걸리고 나니 쉽지 않았다. 글을 읽어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고 쉬었음에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거기다가 간헐적으로 터지는 기침은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었다. 격리 해제된 이후에 벌써 열흘이 지났건만 내 기대와 달리 아직도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주변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코로나는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고 이겨내는 방식도 다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침이 잦아들었던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묵직하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일요일 새벽에 산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숲해설가 시연을 마친 후 토요일 저녁에 수액 주사를 맞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산행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한동안 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도 한편으로는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걱정이 되어서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무렵에야간신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적게 잤기 때문인지 새벽에 길을 나서는 데 몸이 무거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나?     


이번에 가기로 한 곳은 제법 경사가 있는 산이다. 처음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경사로를 조금씩 오르다 보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몸 상태가 느껴진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더 이상 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정상을 정복하는 산행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쉬면서 겨우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산행에서 만난 망개버섯 가족 


그러다가 우연하게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한 무더기 버섯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산행을 하다 보면 버섯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먹을 수 있는 버섯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구별하는 안목이 있는가이다. 산행에서 만나는 버섯은 양면성을 띤다. 자칫 버섯의 생김새만 보고 착각을 해서 버섯을 먹고 고생을 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흔히 생기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는 버섯이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사진을 찍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망개버섯이라한다. 당연히 식용으로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내년부터 버섯을 공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 삽주


숲과 친해진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숲에 갈 때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노린재의 수피와 정금나무의 수피를 구분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예전에 보았던 잎과 달라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없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만 가지고 나무를 판별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진달래와 철쭉은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지만 진달래의 꽃이 모둠으로 핀다는 사실이나 루페로 보면 털이 확실하게 드러난다거나 털이 많은 털 진달래가 덕유산이나 지리산에 있다는 사실은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롭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나무이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설명을 해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시간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헷갈리는 식물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사위질빵과 할미밀망이그렇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 가운데도 두 개를 구분하기 어려운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활짝 꽃이 핀 사위질빵


흔히 가장 구분하기 쉬운 방법은 할미밀망은 잎이 다섯 개이고 사위질빵은 잎이 세 개라는 특징이다. 또한 할미밀망은 6월경에 꽃이 피고 사위질빵은 9월경에 꽃이 피는 것도 차이가 있다. 사위질빵은 장모의 사위 사랑을 이야기할 때 곧잘 등장하는 식물로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한 장모가 사위질빵으로 묶어줬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위질빵은 손으로 가볍게 잡아당기기만 해도 쉽게 끊어지는 식물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장작이나 등짐처럼 무거운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위질빵은 은연중에 딸을 생각하는 장모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식물이다.


또한 비슷하게 보이는 식물로는 도깨비바늘과 가막사리가 있다. 도깨비바늘과 가막사리를 구분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도깨비바늘의 경우 헛꽃(설상화)이 두 개나 세 잎 정도 난다는 사실이고 가막사리는 꽃을 둘러싼 창포가 꽃보다 더 길게 올라온다는 점이다. 도깨비바늘은 쌍떡잎식물이자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문제는 가막사리도 같은 쌍떡잎식물이자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라는 사실이다. 언뜻 잎만 보아서는 두 식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미국가막사리와가는잎가막사리가더해지면 머리가 아파온다.


                                                                 도깨비바늘

                                                                  가막사리


그런가 하면 꽃만 봐서는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는 식물 정화에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고마리와며느리밑씻개의경우가 그렇다. 우리 식물 가운데는 가끔 여성을 비하하는 그런 이름들이 종종 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며느리밑씻개이다. 언뜻 봐서는 꽃의 모양이 비슷하지만 고마리는 잎의 모양도 확연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가시가 없다.


                                                    하천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마리


반면에 며느리밑씻개는 까칠한 가시가 있기 때문에 한눈에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식물로는 며느리배꼽이 있다. 이 둘은 잎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줄기 중간 부분에 배꼽 모양의 특징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잎자루가 잎의 배꼽 위치에 붙으면 며느리배꼽이고, 잎바닥(葉底)에 붙으면 며느리밑씻개다. 며느리배꼽을 유럽인들은 ‘악마의 꼬리를 닮은 풀(Devil’s-tail tearthumb)’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골칫거리라는 의미인데 이는 며느리배꼽의 번식 속도가 엄청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막살나무와 덜꿩나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비슷한 나무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둘은 꽃이 피는 시기도 비슷하기 때문에 더 헷갈리기 쉬운 나무이다. 나는 가막살의글자 수가하나 더 많기 때문에 옆으로 더 퍼져 있다고 외우기로 했다(원조는 박형근 선생이다). 그랬더니 한결 나아졌다. 이처럼 식물의 이름을 외우기 힘들 때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식물을 받아들이고내 것으로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동덩굴과 식물인 가막살나무


요즘 식물을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우리가 마치 유럽에 가면 유럽인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처럼 처음 식물을 공부할 때는 잎도 비슷해 보이고 꽃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식물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식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이름을 아는 꽃과 나무가 많아지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한 번 보고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헷갈리는 과정을 거쳐서 식물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 식물들은 오래 내 안에서 머물면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같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못 보던 이들을 만나 같이 산행을 하며 식물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지금 피어야 할 때가 아닌데 핀!


내가 숲에 가서 꽃이나 나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들도 여러 선배님들의 배려와 관심 덕분이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더운 날씨 탓에 땀을 흠뻑 빼다 보니 내려오는 발걸음이 아주 가벼워졌다. 그저 숲에 가서 나무만 봐도 마음이 여유가 생기고 치유된다는 말이 오늘처럼 실감 난 적이 없다. 살면서 내 인생에서 숲을 만나는 것만큼 큰 기쁨을 주었던 것은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숲을 공부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식물과 만난 지가 몇 해 지났지만 여전히 식물의 이름은 어렵고 한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문제는 내가 앞으로 숲과 친해지면서 풀어가야 할 나의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보에 매달리는 순간 나는 숲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숲의 또 다른 매력은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오늘만 해도 내려오면서 길을 잘 못 들어서 없는 길을 개척해가면서 간신히 내려왔다. 한참을 길을 따라 내려왔는 데 갑자기 길이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는 계곡물을 따라 걷거나 민가 쪽으로 방향을 틀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 키보다 높게 자란 조릿대를 헤치고 내려오면서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전하게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든든한 동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를 잊고 핀 노루오줌


오늘도 덕분에 또 산에서 무사히 내려오는 행운을 맛보았다. 살면서 가끔 길을 놓칠 때가 있다. 때로는 그 길이 내가가야 하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길도 포기하지 않으면 멋진 결과로 이어진다. 여행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우연이 더 멋진 추억을 선사한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게 낯선 하나의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코로나 후유증이 한 번의 산행으로 완전히 다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산행을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내가 그랬듯이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자연이야말로 내가 세상과 만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혜택이며 은혜라 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지금 머리가 복잡하다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당장 지금 하는 일을 멈추고 숲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숲에 가서 눈을 감고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계곡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 나비의 날갯짓, 부산한 무당벌레의 움직임 등 이 모두가 숲이 내게 들려주는 소중한 이야기다. 그 소소한 이야기들이야말로 내가 아니 당신이 세상을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뜨거운 삶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당신의 눈부신 삶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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