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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08. 2022

사라진 일주일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그동안 잘 피했다 싶었는데 코로나라니. 집 근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때도 설마 하는 생각과 ‘음성입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보기 좋게 무산되어버렸다. 병원에서 코에 면봉을 넣는 고달픈 검사를 받고 잠시 후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기대와 달리 ‘양성입니다’를 외쳤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기를 내심 바랐다. 마침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찾은 아저씨가 한 명 있었기에 그 사람과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후 간단한 설명을 듣고 1층 약국에서 약을 탄 후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아내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내는 병원에 가기 전 통화를 했던 탓인지 비교적 담담했다. 내 행동반경은 방 하나로 좁혀졌다. 처음에는 약간의 몸살 기운과 목의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식은땀과 함께 견디기 힘든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근육통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일어날 수조차 없어서 계속 침대 위에서만 뒹굴다시피 했다. 잠깐씩 몸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기는 했다. 그 순간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응급실로라도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증상이 나타난 후 2~3일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고 후유증 역시 제각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초기에 나는 고열도 안 나기에 덜 힘들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아니었다. 근래에 내가 겪은 고통 중 가장 강력했다. 기침은 간헐적으로 나다가 점점 더해졌다. 이래서 목이 아프다는 말이 나오나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아내가 사다 준 목캔디로 목을 달래니 통증이 조금 덜했다. 하기는 지금 오미크론 변이로 처음 코로나 발병 시기보다는 강도가 약해지기는 했다지만 여전히 사망자가 적지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 정도면 약한 편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못 쉬었던 걸 만회할 겸 해서 쉬자는 생각이 강했다.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보니 쉬기는 한다고 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역시 세상은 생각대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5일째로 접어들면서 기침도 조금씩 줄었고 근육통도 약하게 남았다. 큰 고비는 넘기지 않았나 싶다. 여전히 기침이 남았다. 몸도 가뿐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언제까지나 기침이 날 수는 없고 몸도 계속 아플 수는 없으니 시간이 약이다. 위안이 되는 일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겪었다는 두통이 나타나지 않았고 고열도 없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이제 남은 일은 후유증을 크게 겪지 않고 낫는 일이다.      


격리 해제일이 가까워지면서 내심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듯이 몸이 좋아지기를 희망했다. 기침 역시 죽일 것처럼 힘들게 하다가도 좋아지려면 어느 순간이 갑자기 좋아지는 법이기에.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몸은 무거웠고 기침은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몸이 초기보다 좋아진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동안 코로나를 앓으며 회복의 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조금씩이나마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다. 주변에서 후유증이 제법 오래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게 내 차례가 아니기를 바랐다.      

     

드디어 격리 해제!

그토록 기다리던 날, 역시 자유는 향기로웠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일주일을 통째로 드러냈건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다행히 119를 불러야 하는 일도 생사의 갈림길 같은 극적인 순간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몇 일정을 조정했을 뿐이다. 아파서 골골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스팸문자는 왔고 아는 이들과 카톡을 했으며 국가가 정한 대로 강제 휴식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포항에서 주차장에서 생사가 갈린 어머니와 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올라왔고 관련 기사를 찾아 읽으며 가슴이 내내 아팠다. 내가 방안에 꼬박 일주일을 갇혀 있는 동안 역대급이라는 힌남노는 왔다 갔고 안타까운 이들이 또 이렇게 목숨을 잃었다.         

                 

엄마 

오늘은 비가 참 많이 왔지요 

어쩌나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르다가 

엄마가 앞서고 

내가 뒤에 따라나섰지요      


그 새벽에 

엄마만 보내면 마음이 불편해서 

괜찮다는 엄마 우산이 되고 싶어서 

따라나선 길이었지요      


그래도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14시간 동안 엄마 혼자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도 그 곁에 있었어요      


엄마 잘못도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우리 조금 일찍 헤어졌어도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일찍 만나게요      


긴긴밤을 혼자 있을 우리 엄마

밤하늘에 내가 별이 되어 

엄마랑 같이 가줄게요 

그러니 울지 마요

            -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어떻게 그 가족은 이 긴 시간을 보내야할까? 한동안 얼굴도 본 적 없는 이 아이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리란 걸 알지만, 


코로나에 걸렸던 일주일. 

이렇게 깔끔하게 비워도 되는 게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아등바등거리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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