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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1. 2023

몽환적인 이국의 땅, 빠이를 만나다

아찔한 새벽 일출반자보 

새벽 4시 반. 반자보 일출을 보기 위해 일행과 만나기로 했던 시간이다. 반자보로 가는 밴의 앞자리에 탔던 친구 얘기로는 가는 내내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나 역시 잠결에 차가 많이 흔들린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길이 험해서 그런가 했으나 기사의 운전실력이 문제였나 보다. 



우리가 반자보에 도착했을 때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다만 어슴푸레하게나마 윤곽이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기사가 내려준 곳이 일출을 보는 곳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표지판도 없을뿐더러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허술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일출을 볼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시골이다 보니 한 집에서 닭 한 마리가 울면 사방에서 닭들이 울어댔다. 이런 시골마을이 일출 명소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워낙 평범한 시골 마을인지라 딱히 일출 명소라고 할 만한 곳이 없어 결국 처음에 내렸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날이 흐려서 처음에는 해가 이미 떴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한참 지나자 조금씩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어서 공유하던 그 멋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새벽이라 기온이 낮고 일찍 길을 나선 터라 허기가 졌다. 마침 국숫집이 연 곳이 있어서 우리는 일출을 보며 국수 한 그릇씩을 비웠다. 이곳 국수를 사람들은 절벽 국수라고 하는데 비탈진 곳에 건물을 세우다 보니 마치 절벽에서 먹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그곳에 가기 전 사람들이 풍경을 묘사하거나 설명한 내용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 도착하는 순간 그 궁금증은 바로 해소된다. 이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구나, 이게 이렇구나 하는 식으로 보다 명확해지는 것이다. 가보지 않고 사진이나 글만으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게 현지 상황이다. 현지에서 부딪히는 실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고 직접 체감하기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새 내 기억에 저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밤의 빠이 변신은 무죄

오후 6시가 되면 빠이는 낮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워킹 스트리트에서 차를 통제하고 사람만이 통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부터 길거리 노점상이나 빠이가 자랑하는 클럽들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다. 나는 빠이에서 만난 일행과 야외 식당에서 무카타를 먹었다. 우리는 그동안 여행지에서 경험한 자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빠이에 대한 각자 느낀 인상도 나누었다. 



빠이의 밤은 조금 더 길어도 좋았다. 바람은 선선했고 하늘은 맑았다. 도심에서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평화가 거기 있었다. 사람들은 빠이에 와서 자신이 살아온 삶과 불확실한 미래를 잠시 밀쳐두고 팟타야와 땡모반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액티비티를 즐긴다. 밤에 야시장이 열리면 또 클럽 순례의 길에 나선다. 길을 걷다 보면 아는 얼굴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빠이의 밤은 깊어지고 우리는 어느새 빠이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구경하며 길을 걷는 내게도 자유와 즐거움, 젊음의 열정이 워킹 스트리트의 클럽마다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클럽이나 카페에 머무는 사람들은 라이브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거나 따라 부른다. 그들은 술이나 차를 마시며 빠이가 그들에게 베푼 자유를 마음껏 만끽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쾌한 웃음소리와 흔드는 몸짓이 자연스럽게 더해진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들이 빠이에서 맛보는 평온과 행복을 감히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다. 




술을 마시던 클럽의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간다. 클럽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숙소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애프터 파티를 하기 위해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선다. 밤 11시를 훌쩍 넘겼는데도 마치 초저녁처럼 워킹 스트리트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길거리에서 풍경 사진을 찍고 있으면 갑자기 모르는 외국인이 불쑥 등장해서 포즈를 잡는 바람에 너털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자유로운 영혼이 그리울 때면 빠이의 밤거리가 떠오른다. 



숙소에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행자 거리로 나왔을 때 나는 잠시 이방인이었다가 빠이의 일원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내게 좀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캐녀닝을 비롯한 몇 가지 액티비티와 클럽 순례를 하며 빠이를 좀 더 즐겼을 것이다. 비록 그러지는 못했지만 나는 잠시나마 빠이의 주민이었고 빠이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는 게 적잖게 위안이 되었다.



캐년의 해가 질 때 내 마음에도 해가 지고 있었고 반자보의 해가 뜰 때 나도 거기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오래 머물면 머무는 대로, 짧게 짧게 머물면 머무는 대로 그 자체가 좋은 게 빠이이다. 부디 당신이 빠이를 갈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기 바란다. 시간 여유가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단 하루만이라도 빠이에 가서 당신의 젊음을, 그리고 당신이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 흥겨움과 넉넉함을 마음껏 누리기를 기원한다. 


어쩌면 빠이에서 그동안 당신이 꿈꾸던 자유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사실 빠이는 자연친화적이라는 점에서 라오스의 방비엥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경계를 풀고 여행을 즐기고 사랑하고 누군가와의 인연을 맺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한가하고 느긋함에 한 번 길들여지면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빠이가 ‘히피의 무덤’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빠이는 풍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순박함이 넘쳐나는 시골 동네이다. 우연히 만난 빠이가 여행지에서 만난 최고의 기쁨이자 뜻밖의 행복을 줄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이곳을 방문한다면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왜 여기에 그렇게 열광하고 흠뻑 취하는지를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낮의 여유와 한가함이 밤이면 활력과 열정으로 바뀌는 빠이, 밤하늘이 밀물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빠이에서 나는 치앙마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내밀하면서도 속 깊은 빠이가 내게 허락했던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나는 그렇게 빠이를 내 마음속 깊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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