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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4. 2023

하마트면 실명할 뻔 했다

- 내 인생의 공작나비

강원도에는 공작나비가 산다. 작년에 강원도로 며칠을 출근했지만 날갯짓 하나 보지 못했다. 나흘을 투자했으니 적어도 하루 정도는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어떤 날은 흐려서, 어떤 날은 해가 없어서, 하루는 기온이 맞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나비를 기다리는 게 어떤 마음일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 나비 애벌레를 키울 때 먹이가 떨어지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밤에도 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오래 키우다 보면 애벌레는 번데기로 변한다. 다음부터는 기다리는 시간이 기다린다. 그렇게 한참의 기다림의 끝을 잡고 마침내 나비가 온다. 나비가 우화하여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만큼은 쉽게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알에서부터 시작한 오랜 여정이 끝나는 것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탐사의 목적은 나비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공작나비라니. 




하지만 지난주에 같은 장소에서 포충망 사냥꾼에 의해서 공작나비 세 마리가 잡혀 갔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화가 났었다. 겨우 내내 목 빠지게 공작나비와의 조우를 기다렸던 이들 앞에서 포충망으로 잡아채버린 행위는 두고두고 비난받을 만한 경악스러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렇다고 멱살잡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도 나처럼 씩씩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옛날과 달리 요즘 같은 시기에는 나비를 채집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특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비,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는 나비를 채집하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다. 물론 나비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만 생각하는 그 이기심이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자연 훼손으로 이어졌다. 나비가 살 수 있는 기주식물이 있는 땅을 무분별하게 개간하거나 알과 애벌레가 사는 풀을 제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날 운 좋게도 네 마리 정도 공작나비 개체를 만났으나 나비 상태는 미안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다행히 한두 마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날개가 깨끗한 성충을 찍고 싶었지만 그게 어찌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한참을 찍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제법 되었는지 공작나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날을 기약하고 산장으로 철수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야외에서 먹는 저녁은 더 맛있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산장에서 등화 준비를 했다. 밝은 수은등을 켜면 그 불빛의 파장을 따라 벌레들이 모여든다. 강제 유인책인 셈이다. 대개 낮에 보기 힘든 다방들이 대부분이지만 운이 좋으면 하늘소나 다른 곤충도 찾아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압 때문인지 등이 깜빡거리기만 할 뿐 켜지지 않는다. 오늘은 어렵겠다고 포기하려다가 간신히 자리를 바꿔서야 등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다방도 많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건 네눈박이산누에나방이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나비에 못지않게 화려하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네눈박이산누에나방의 암컷과 수컷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개암나무를 먹는 네눈박이산누에나방의 수컷은 암컷에 비해 색도 진하고 날개도 화려하다. 나방은 나비만큼이나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비에는 호감을 보이던 이들도 실제 나방을 보면 기겁하는 게 현실이다. 나방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때 누군가 갑자기 “박각시다! 대왕박각시”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땅바닥에는 평소라면 보기 힘들었을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박각시가 있었다. 대왕박각시를 나무에 붙여두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대왕박각시의 한 마리를 찍고 난 후 다른 개체가 다시 날아왔다. 곤충을 아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없는 게 대왕박각시이다. 



그날 우리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곤충을 만났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곤충을 관찰했다는 마음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고대하던 공작나비도 보았겠다 등화에서 얻은 수확도 만만치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을 자던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프다. 마치 매운 청양고추를 손으로 만진 후 그 손으로 눈을 비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새벽 4시경이라서 말은 하지 못하고 엉금엉금 싱크대 쪽으로 가서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었다. 조금 지나면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보다는 그나마 좀 덜했지만 여전히 따갑고 아팠다. 너무 아프다 보니 저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눈 자체를 뜰 수가 없었다. 살면서 자다가 갑자기 눈에 안 보이는 경우가 몇 명이나 있을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도 힘들어 하자 오 선생이 잠결에 차가운 물을 적셔서 물수건을 만들어 갖다 주었다. 아픈 눈 위에 올려놓으니까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그나마 있었던 오 선생의 관심도 사람들 틈에 섞여서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남들 다 자는 귀한 새벽 시간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몇 차례를 보이지 않는 눈으로 수건을 바꿔가며 대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실명을 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보통 TV 등을 보다 보면 한순간에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물론 내 경우는 거기에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몇 시간 동안 고통이 이어지다 보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남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관찰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했을 뿐인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일요일 아침이라 여는 병원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119를 불러서 가는 것도 애매했다. 아마 고통이 더 심해졌더라면 나는 별로 없는 선택지엣 일부를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같이 누워있던 학생 한 명도 자기도 눈이 안 보인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혼자가 아니다. 순간 묘한 동질감과 함께 마음에 안도가 생겼다. 적어도 나 혼자만 고통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뭔가 둘 사이에 교집합이 있을 텐데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등화 이야기를 꺼낸다. 가끔 강렬한 빛을 오랫동안 쬐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등화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원인을 알았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그동안 몇 시간 동안이나 안절부절못하던 내 마음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한결 편해졌다. 그래도 눈이 아픈 것은 여전했다. 눈을 뜨지 못하는 사진을 찍은 걸 나중에 봤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눈꺼풀 올리는 일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건 잠이 그만큼 참기 힘들다는 이야기할 때 나오는 말이자 나와 같은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물론 나도 힘을 주어서 눈을 뜨고 싶었지만 상황은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꼼짝없이 눈뜬장님이 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8시 무렵 드디어 실눈이나마 뜰 수 있었다. 여전히 불편했지만 몇 시간 만에 나온 가장 큰 성과였다. 아까의 불안감은 사라졌다. 이제 가능성이 보이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 생겼다. 그렇게 떠지지 않는 눈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그게 등화 때문이라는 걸 아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번이 처음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청이를 보고 눈을 떴듯이 나도 공작나비를 보러 갔을 때 누군가 “공작나비다!”라고 소리치면 눈이 번쩍 떠졌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평소라면 그런 상상을 했을 리 없지만 눈이 고장 나니 별생각을 다한다 싶었다. 다행히 나비를 보러 가면서부터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눈이 한결 좋아진 걸 느꼈다 하지만 강렬한 태양빛 아래 눈이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시리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한 분이 자신의 선글라스를 빌려주어서 눈이 훨씬 덜 피곤했다. 오후가 되면서 눈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통증도 어느 정도 가시고 뜰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공작나비와 연쇳빛부전나비, 그리고 쇳빛부전나비를 찍을 수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정말 위험한 등화였다고. 만약 혼자였더라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이 모두가 공작나비를 보러 가서 강원도에서 겪은 일이다. 다섯 번만에 공작나비를 보아 행복했지만 실명 직전까지 갔던 사건은 앞으로 살면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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