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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10. 2023

은하수를 만난 날

청산 가자 

둘째 날 행선지는 청산이다. 이곳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전동차로 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남아서 식물 탐사를 하기로 했다. 초원지대이니 당연히 무언가 볼 게 있을 것이다. 모르는 이의 입장에서는 별로 볼 것도 없는데 무슨 식물 구경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모르는 이의 시각에서 볼 때의 이야기이다. 생명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신비하고 다채롭다.      



입구에서 케이블카 종착지까지는 대략 25분 정도 걸리는 여정이다. 1,200m가 넘는 거리를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다. 그래도 비교적 높지 않아서 무서움은 덜하다. 만약 그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면 아마 대부분의 관광객은 포기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걸어서 갔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곤돌라 덕분에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비교적 다양한 식물을 만났다. 생태환경이 비슷해서인지 한국에서 보는 식물이 거기 있었다. 이후 북악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계단이 제법 많았다. 계단을 오른 후 만난 경치는 내가 진짜 초원에 와 있다는 걸 실감 나게 만들었다. 꼭대기까지 올라서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초원을 가로질러 길로 전동차가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개의 청산 관광객이 택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보았던 이 멋진 풍경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다.      




이 날은 청산에 다녀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우리를 반긴 건 게르였다. 게르는 이번 여행에서 한껏 기대를 부풀게 만들었던 동인이었다. 한편으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전통 게르를 다녀온 이들이 공통적으로 불편했던 화장실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유목민 입장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화장실을 해결했겠지만 여행객은 다르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현대식 게르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사실 이번 몽골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은하수였다. 우쓰라 사진팀에서 몽골 여행을 갈 때도 은하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일정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그 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 이번 여행을 택하기는 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정을 조율하는 데 가장 크게 염두에 둔 것은 보름달을 피하는 일이었다. 내몽골 자체가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니만큼 이번에 은하수를 볼 수 있다면 보아야 했다.       

은하수를 찍는 데 가장 최적의 시기는 보름달을 피하는 것이다. 은하수를 찍겠다면서 자신의 일정대로, 시간 허락하는 대로 가서 찍으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달 때문이다. 자연물 가운데 태양을 제외하고 가장 밝은 게 달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간 여행을 망치는 이유는 사전 준비 없이 갔기 때문이다. 보름달은 은하수를 찍는 데 가장 큰 적이다. 그래서 은하수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최대한 없는 시기를 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 일행도 이번에 꼭 은하수를 찍겠다는 각오로 새로 렌즈를 구입하기도 했다. 은하수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리개가 F1.8 정도인 렌즈가 적당하다. 몽골에 가기 전에 미리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했지만 그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게르의 분위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우리가 묵을 게르촌을 보는 순간 드넓은 초원에서 밤하늘을 찍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왜 가이드가 게르 호텔이라고 하는지 말 만했다. 그렇다면 일출은 어디서 보느냐고 질문하자 가이드 답변은 찍을 만한 데가 없다는 것이다. 여행사에서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하는 이야기라는 말을 듣자 속은 느낌이었다. 은하수와 일출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르는 몽골 초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유목민족인 몽골족에게 게르는 가장 친화적인 이동식 주택이다. 흔히 게르는 펠트 천으로 덮여 있는 원형의 나무 구조로 만든다. 펠트 천은 예전에는 양의 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동을 수시로 해야 하는 유목민 입장에서 이동식 구조물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게르를 세울 때는 상당히 난이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도 사용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에는 게르가 주거용이 아닌 보조수단으로 쓰인다고 한다. 젊은 이들은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가는 경우도 많아 남은 이들만으로는 초원에서 양과 말을 방목하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고 했다. 도시에서는 게르를 이용하지 않는다. 삶의 편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더 이상 게르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게르를 설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게르에서는 난로나 불을 피워 난방을 한다. 몽골의 추위는 상상 이상이다. 이때 유용한 연료는 양이나 말의 똥이다. 동물의 똥은 건조된 이후에는 땔감으로서 구실을 톡톡히 한다. 초원에 널려 있는 동물의 똥은 가족들에게는 몸을 덥히고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연료이다.       



그나마 저녁식사 후에 있었던 캠프파이어와 공연이 우리의 절망감을 달래주었다. 광장에서 어울려 춤을 추며 모처럼만에 우리가 중국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 이후에는 폭죽놀이가 이어졌다. 우리나라라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이네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폭죽을 터뜨린다. 중국인들의 폭죽 사랑은 도가 넘는다. 하기는 4대 발명품 중의 하나가 폭약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으면서도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보니 새벽까지 이어지는 폭죽소리에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중국여행을 시작한 첫날이다 보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그리웠다. 하지만 미지근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런 기대는 사라졌다. 우리는 중국에 있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찬 음료라면 질색한다. 그런데 맥주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배앓이를 하거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이들의 상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양꼬치를 안주 삼아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다. 양꼬치는 8위안, 소고기꼬치는 6위안이었다. 신선해서인지 노린내는 나지 않았다. 우리는 추가로 양꼬치를 조금 더 시켰다. 개인당 하나씩 맛보기를 선택한 우리와 달리 가이드는 꼬치를 수북이 쌓아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는 곳곳에서 양요리를 맛볼 수 있는 게 내몽고이다. 가장 구하기 쉽고 신선한 게 양고기다 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만약 맥주가 시원했더라면 몇 병 더 마셨을 텐데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 그래도 은하수 사진을 몇 장이라도 찍어보자는 심정으로 삼각대를 준비해서 나왔다. 박 선생이 핸드폰으로 은하수 사진 찍는 법을 공유해 주어서 시도해 보았다. ISO 800, 셔터 스피드 30. 그냥 핸드폰으로 찍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별이 카메라에 담겼다. 하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좀 더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후회막급이었다.      

낮시간대에는 후텁지근했던 날씨가 저녁을 넘어서자 추워지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파카를 입고 자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8월에도 이 정도라면 가을에 눈이 내린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겠다 싶었다. 자정을 넘어가자 같이 나왔던 이들이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들어갔다. 

잠을 잠깐 설쳐도 좋은 밤입니다

별이 머리 위에서 부서지고 

나는 잠을 자기는 다 걸렀습니다.

딸은 눈물이 나오고 아빠는 콧물이 나오는 밤입니다.      

별도 밤도 세상도 저렇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우리는 저만치 가지 못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별은 저렇게 하늘을 흐르고 

우리는 그 바람을 타고 올라갑니다     

그냥 잠만 자기는 너무 아까운 밤입니다 

왜 별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는 걸까요? 

날은 이렇게 맑은데 

별은 저렇게 총총한데, 

바람은 서늘한데

-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혼자 남아서 별 사진을 찍다 보니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피곤한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어 혼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중간에 유성이 떨어지는 것도 두세 번 보았다. 긴 꼬리를 물고 떨어지지 않아 아쉽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에 볼 수 있는 것만도 어딘가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 이상으로 바람이 차서 밖에 오래 머무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경량패딩을 준비했던 것이 주효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야외에서 덜덜 떨면서 사진을 찍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정도가 아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별이 보이더니 마침내 하늘 전체가 별로 꽉 차버렸다. 어림짐작으로 은하수라고 생각할 만한 별무리도 있어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카메라로 찍는 건 처음이다 보니 나중에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핸드폰으로 셔터 스피드와 ISO를 설정하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이 게르를 가득 메웠다. 하늘이 주는 축복이 게르에 넘치고 있음을 자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은하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게르에 가득 차 있었음에도 실제로 이를 경험한 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던 중 딸아이와 함께 온 아빠가 너무 추워서 잠이 깼다며 나왔다. 나는 핸드폰으로 찍는 설정을 해주었다. 그는 사진을 보며 뜻밖의 사진을 얻었다며 좋아한다. 나중에 나온 딸아이는 별이 예쁘다며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다가 추워서 잠이 깼습니다

밖을 나오니 딴 세상이 거기 있었습니다.

내가 자느라 놓쳐버린 별들이 

몽골의 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하늘 구석구석으로 몸을 옮기고 

나는 잠시 저 별이 되어 봅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이 저 세상에 있었군요

방금 별똥별 하나가 세상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내 눈도 그 짧은 시간을 잡느라 움찔 놀랐습니다 

오늘 또 몽골의 밤이 또 지고 있습니다.

- 몽골의 밤          


별이 쏟아지는 그 시간에 아빠와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다시 알게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 둘도 떠나고 난 후에도 나는 아쉬움으로 조금 더 머물렀다. 하늘의 별이 나와 가장 가까웠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나는 그 위대함을 눈앞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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