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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19. 2023

‘풀’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 <풀들의 전략>


옥수수 농사를 지었던 적이 있다. 처음 농사를 짓다 보니 뭐부터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여러 작물 중에 옥수수를 심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씨앗을 구해 땅을 파고 옥수수를 심었다. 

잔뜩 기대하고 가보니 풀만 무성했다. 분명히 옥수수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옥수수는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서 아는 이에게 물어봤더니 올해 농사는 포기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싹이 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속은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혹시나 하고 다시 가보았다. 

무성한 풀 사이로 100여 개 싹이 난 옥수수가 거기 있었다. 간혹 풀을 베기는 했으나 풀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팔 것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말고 제초제도 쓰지 말고 건달농사나 지으라는 조언이 따라왔다. 그래도 초가을 무렵, 제법 먹을 만큼 옥수수를 수확했다. 자연의 생명력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웠다.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올해는 모종을 사다가 직접 심었다. 풀이 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식초를 기반으로 한 제초제까지 만들어 뿌렸다. 당연히 수확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올해는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이 왔다. 몇 번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일이 생겼다. 결국 중간에 한두 번 간 걸로 만족해야 했다. 나중에 가보니 옥수수는 흔적도 없고 풀만 무성했다.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풀이 자라 있었다. 폭염과 장마 때문이었겠지만 다 자란 풀이 무서울 정도였다. 깨끗이 마음을 비우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모종을 심고 풀을 베며 보냈던 시간이 허공에 날아간 느낌이었다.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주변 식물에 대해 관찰을 바탕으로 쓴 잡초 이야기이다. 당연히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 그의 주된 관심대상이다. 이 책에는 평소 우리가 흔히 보는 다양한 식물 이야기가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일부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고 전문적인 부분은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특히,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은 우리가 흔히 꽃무릇이라고 부르는 석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맘때쯤 한창 산이나 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이 식물이 구황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우리에게 친근한 쑥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제비꽃, 광대수염, 질경이, 타래난초, 메꽃, 계요등, 고마리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마다 많은 분량이 아니라서 쉽게 읽힌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동안 무심히 보았던 잡초가 이렇게 다양한가에 놀라고, 그 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접하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 폭염과 장마 앞에 풀의 강인한 생명력에 완패한 나로서는 풀들의 전략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었다. 누군가 이 책을 접하면서 잡초의 생명력과 그 매력에 빠지면 좋겠다. 내년 농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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