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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29. 2023

블루 시티, 조드푸르

인도는 크게 세 가지 계절로 나뉘는데 여름(3월부터 6월까지), 장마기(6월부터 10월까지), 그리고 겨울(11월부터 2월까지)이다. 지금은 건기가 막 시작하는 때로 여행하기 최적의 시기이다. 인도에서는 1~2월이면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기질이 좋지 않다. 우리가 10월을 택한 이유는 이 무렵이 다른 시기에 비해 그나마 시야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드푸르(Jodhpur)는 흔히 파란 벽과 지붕으로 ‘블루시티’라고도 불리는 라자스탄의 성곽 도시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옛 도시 지역의 많은 집과 골목이 청량감을 주는 파란색 물결이었다. 



조드푸르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는 아짓 바완이다. 우리 숙소 건너편에 위치한 호텔은 성처럼 보인다. 그곳은 하루 최소 200만 원이라는 데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하니 터번을 쓴 집사가 환한 미소로 반긴다. 우쓰라 이야기로는 15년 동안 이곳을 지키는 이라 했다. 호텔 인상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근사하고 화려하다. 



정원을 지나 마주한 숙소는 최고급이라 할 만큼 시설이 좋다. 수영장에 피트니스 센터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숙소에서 호젓한 호캉스를 즐겨도 좋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호텔에만 있을 수는 없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조드푸르를 좀 더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저녁 무렵, 우리가 도착한 곳은 조드푸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클락 타워였다. 조드푸르의 모든 길은 클락 타워를 기점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 처음 조드푸르 시장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는 길을 잃으면 클락 타워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지침이었다. 조드푸르 사람들은 클락 타워를 다 알고 거기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버스가 클락 타워까지는 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인근에 내렸다. 시장통이 우리가 아는 느낌과 상당히 다르다. 굉장히 활력이 넘치고 시끌벅적하다. 주변이 온통 왁자지껄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마치 축제라도 벌이는 중간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만약 여기서 헤어지면 일행을 찾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보기에 조드푸르 시장의 야경 모습은 지저분하다. 쓰레기들이 바닥에 널려 있고 골목도 어수선하다. 그런데도 시장 골목을 도는 데 묘한 매력이 전해져 온다. 만난 사람들도 친절하고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들도 정겹다. 사원에서 만난 악사도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골목을 돌다 보니 아이를 안은 가족을 몇 번이나 만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반가운 표시를 한다. 특히 골목에서 만난 10대들은 해맑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나라라면 불량 청소년이었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어쩌면 이게 인도의 매력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메헹가르 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성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그 옆에 있는 조드 동상으로 가는 길도 막혀 있다. 알고 보니 코로나 때문이란다. 9시 개장 전까지는 할 게 많지 않다. 대신 언덕에서 바라보는 조드푸르 시내만큼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언덕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언덕 아래에는 평온한 조드푸르가 아직 깨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일출을 성에서 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모든 일은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해야 한다. 우리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릭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전선줄에 나란히 앉은 몇 마리 새까지 더하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잠시 쉬었다가 아침을 먹고 오전 출사를 나갔다. 본격적인 조드푸르 골목길 출사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클락 타워로 가는 길에 시장통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에서 느낀 점은 도처에 찍을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건물이건 카메라를 들이대면 바로 작품이 되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사방이 사진을 찍을 거리로 넘쳐난다. 아마 이건 전 세계에서 인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일 것이다.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가게 주인들은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길을 걷는 내내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느낌이었다. 인도를 찾은 이들에게 인도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인상이나 도시를 떠올릴 때 이미지로 먼저 접근한다. 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첫인상을 던져주고 오래 기억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도는 이미지가 뚜렷한 나라이다. 만약 이런 곳에서 활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조드푸르의 유일한 한국식당은 언덕 위에 있었다. 루프탑에서 보이는 조드푸르의 전경은 이곳에 왜 블루시티인가를 확인시켜 주었다. 아쉬운 점은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느낀 점이지만 인도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점은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이가 적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폭풍 흡입을 했다. 




이 골목 삼거리는 메헹가르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마침 포토 출력 사진기를 가지고 있던 일행이 있어 사진 몇 장을 선물할 수 있었다. 여기서 5분 정도 올라가면 성이 나온다. 우리는 성 관람 마감시간인 5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같이 돌기로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알려진 메헹가르 성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모스크 사이로 보이는 성의 매력적인 공간이야말로 혼자 갔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곳이다. 성 주위의 풍경은 운치 있고 아름다웠다. 그중 우리는 사각 프레임에서 찍은 사진에 꽂혔다. 문제는 새가 그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레임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는 힘들었다. 오가는 관광객은 우리가 신기한지 옆에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성을 도는 동안 안내인들은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염은 자신의 자존감을 내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인 모양이다. 다른 나라보다 특히 인도는 남자들이 수염을 많이 기른다. 나는 수염 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곳 안내인들은 그 정도는 아니고 가벼운 느낌을 지닌 이가 많았다. 일부는 긴 수염을 양 볼에 붙이기도 했다. 제법 건사가 힘들 법도 하지만 그걸 즐기는 이라면 상황은 다를 것이다. 멋들어진 수염을 꼬며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에서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근대의 한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나오는 길에 단체 관람을 온 학생들을 만났다. 어디서 왔냐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몇몇 아이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BTS를 이야기하며 환영의 몸짓을 격하게 하였다. 나는 돌아 나오다가 아쉬워서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K-pop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낀 셈이다. 



내려오는 길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들이 있었다.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성을 내려가는 틈에 여자 한 명이 발을 절뚝이며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이 성을 오기 위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늦은 줄 알고 서둘렀지만 알고 보니 일행은 오히려 더 늦게 나왔다. 통화 소통이 어긋나는 바람에 아래 골목길까지 한 번 더 내려갔다 와야 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4년 전에 찍어주었던 아이 사진을 보여주자 자신이라는 아이가 한 명 나왔다. 이런 우연이 있나. 몇 년 전에 만난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본인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몇 년 전에 사진 찍어준 아이를 만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아이를 알아차리는 일도 보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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