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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01. 2023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며


11월은 원고 쓰기와 편집의 나날이었다. 

11월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없었고 새벽까지 작업을 해야 했다. 이전에 글을 쓸 때까지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편집은 달랐다. 이번에 작업한 책에 사진이 워낙 많이 들어가고 사진 설명까지 곁들여야 하는 일이어서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노라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뭐 하는 짓인가는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냥 편집을 맡길 걸 그랬다는 생각이 수시로 나를 사로잡았다. 

이번 책에는 각주가 많지는 않지만 제법 있었다. 문제는 한글 파일과 달리 인디자인에서는 각주가 장별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며칠을 고생했다. 어도비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디자이너에게도 도움을 부탁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강도에 비해 3~5배는 힘들게 작업을 마쳤다. 이제 책 원고는 인쇄소에 넘어가 있다. 부디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제대로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 예상하기로는 100페이지나 간신히 나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 중에서 어떤 내용을 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통상적인 책 쓰기는 책 목차를 구성한 후 작업을 하는 게 편하다. 물론 반대의 경우처럼 원고를 다 쓴 후 이걸 재배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원고가 다 완성되었다고 전제했을 경우다.

하지만 이번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덕 막막했다. 더군다나 내가 그동안 해왔던 전공 분야가 아니라 다소 생소한 판각이었기 때문에 용어 선정부터 글을 전개해 나가는 전문성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지고 시작하게 아니었다.

매주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날 저녁에 돌아와서 새벽 2~3시까지 원고를 쓰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명과 인터뷰를 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다시 그 내용을 확인하고 이런 과정들이 몇 달에 걸쳐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책이 시립도서관 선정 공모에서 선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책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 예상으로는 내년에 책을 내기로 했으나 공모 선정되는 바람에 일정이 당겨지다 보니 마음은 급하고 할 일은 많았다.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기 전까지 며칠 동안 내내 일에 지독히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마지막으로 희망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여행 때문이었다.

아내와 함께 떠나기로 했던 이탈리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나는 버틸 수가 있었다. 여행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설레 때는 여행의 일정과 코스를 짜는 일이다.

처음은 패키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나 실제로 따져보니 9일짜리 상품이라 할지라도 6일밖에 볼 게 없다.

결국 우리는 자유여행으로 급선회했다. 여행사 예약을 취소하고 이왕이면 조금 느긋하게 보고 싶은 데를 더 오래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패키지가 편한 건 안다. 하지만 패키지의 단점은 내가 주도하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다녀왔다만 남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고생고생해서 일정을 자고 숙소를 예약하고 교통편을 알아보면 생사가 내 것이 된다. 그동안 패키지를 여러 번 다녀봤지만 패키지에서 남는 것은 정말 사진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계획하고 짰던 여행은 여행 자체가 온전하게 남았다. 다른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시간들이 나에게 돌아왔다. 바로 그것 때문에 힘들고 고생스럽다더라도 여행 일정을 짜고 검색하고 자료를 모으는 작업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돌아볼까 한다. 이탈리아에서 스페인까지 가는 비행기는 채 5만 원이 되지 않는다. 따로따로 여행을 잡는다면 힘들겠지만, 시간과 여력이 허락되면 그렇게 유럽의 경우에 같은 동선을 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신 전체 일정이 길어지고 체력 안배를 해야 하고 경비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여행일수록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행을 다닐 때마다 깨닫게 된다. 여행 일정이 촉박하면 마음도 급하다.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기 때문에 전체 여행 강도는 세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간을 넉넉하게 잡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지난 2월에 태국과 베트남으로 한 달 가까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오래 남았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한 달씩이나였는데, 돌아올 때는 역시 짧구나였다.

앞으로 또 항공권과 숙소와 교통편과 동선을 찾느라고 새벽까지 시달릴지 모른다. 왜 이걸 선택했는가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나는 이번에 그 선물을 기꺼이 받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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