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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12. 2024

내 인생의 세비야


가끔 어떤 도시가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멋진 풍경이 그럴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이 오랜 기간에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도시를 이해하고 기억한다.



유쾌한 기억보다 불쾌한 기억이 더 오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도시 이름이 나오면 반가움을 표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젖기도 한다. 그 도시가 주는 기쁨이나 상처의 크기만큼 아픈 기억은 더 오래가기도 한다.



여행 도중 우리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한다. 어느 순간에 그치지 않고 평생 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은 도시가 있는가 하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생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도시에 대한 느낌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느끼는 도시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사건 때문에 그 도시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넌덜머리를 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는 사실이다. 



이 세비야라는 도시는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적어도 상당히 우호적인 느낌을 주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도시와 달리 조금은 여유를 느끼고 즐기기도 좋은 도시가 바로 세비야다. 다른 도시가 바짝 긴장을 해야 하는 그런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곳은 좀 더 여유 있고 느긋하게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도시이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좀 더 느긋하고 여유를 즐기고 더 행복해 보인다. 그게 내 개인적인 판단이라 할지라도 내 기억 속에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이 많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세비야는 단순하게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도심을 걷다 보면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도심을 채운 여행객들조차 그 행복한 행렬에 동참한다.



이번 여행지에서 만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도시가 세비야가 아닐까 싶다. 젊은 친구들은 밝고 활기찬 표정으로 돌아다닌다. 이 도시를 걷고 있다 보면 도시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럽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더 활기차고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바로 이 도시다. 


그래서인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걷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진다. 내가 세비야에 사흘째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비아에 머무는 동안 세비야 대성당을 거의 10번 정도는 오가며 지나쳤던 것 같다. 이 대성당은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성당을 찬양하는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이 도시에서는 2~30분 걸어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흥청망청하거나 환락의 느낌을 주는 게 아니다. 골목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각각의 공간은 사랑스러움으로 넘친다. 



저녁은 이곳 사람들도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여행객들은 낯선 도시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카페에서 술을 한잔 하거나 길거리를 배회한다. 어쩌면 이 도시가 주는 가장 큰 미덕은 낯선 이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머물게 하는 대신에 기꺼이 동참하게 하는 그런 즐거움이. 이 도시는 그런 유쾌함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가 유독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도시와 달리 여기서는 중국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이라면 이미 길거리에서 수많은 중국인을 만났으련만 여기서는 몇 명만 만났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사랑하게 된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 공항에서 숙소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좋았다. 골목길마다 쏟아지는 풍부한 색감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동네가 나에게 이렇게 환한 미소를 추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이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를 좀 더 사랑하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은 나 혼자서는 도저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유럽을 이렇게 느긋하게 여행하며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삶이 주는 풍요로움은 어쩌면 이런 소소한 행복에서 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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