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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13. 2024

세비야의 빛나는 밤

나는 이 도시를 너무 늦게 안 것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내가 이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를 좀 더 사랑하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은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떠나오면서도 유럽을 이렇게 느긋하게 여행하며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삶이 주는 풍요로움은 어쩌면 이런 소소한 행복에서 오는지 모른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흘을 보냈다. 첫날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어제와 오늘은 세비야의 밤 풍경을 제대로 즐겼다. 낮에 만난 세비야의 하늘은 눈부셔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렁주렁 달린 오렌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스페인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한 그루라도 오렌지 나무를 집에 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 아침에 길에 나서기만 하면 금방 딸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오렌지 나무를 만나는 일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아쉽기 짝이 없다. 어제 야경은 주로 시내 위주였으나 오늘은 강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았다.



강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비야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온통 내게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다리 위에서 홀로 있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면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따스해서 나는 추운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거나 뛰어가기도 했다. 나는 해가 지는 강변에서 카누를 탄 친구들이 물살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어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 도심에서 카누라니. 배가 지나갈 때면 일으키는 파문이 내 가슴으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풍경은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다른 도시에서라면 느끼지 못했을 여유로움, 그리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요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세비야 사람들이 사랑하는 알카자르, 세비야대성당, 히랄다탑, 살바도르성당, 세비야대학교, 스페인광장, 황금의 탑, 과달키비르 강변, 수백 번은 족히 지나다녔던 골목길, 그리고 플라멩코. 이 모든 것이 세비야라는 이름과 함께 있다. 하루 2~3만 보는 기본이었을 정도로 오래 걸었지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리의 피곤함은 영혼에 채워지는 충만한 기쁨과 충분히 맞바꿀만했다. 



세비야에 머물렀던 며칠은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세비야에 잠시 머물렀다고 해서 세비야를 다 이해했을 거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세비야를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는 불과 며칠 만에 내게 축복 같은 선물을 남겨주었다.




나는 세비야라는 이 멋진 도시를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이 유서 깊은 작은 도시가 주는 평온함, 따스함, 그리고 행복함이야말로 내가 스페인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나는 이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사랑할 것 같다. 



아침 해뜨기 전에 다녀온 스페인 광장은 일몰 명소이기도 해서 해가 지면 공연장으로 변한다고 했다.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어제 내가 만난 가족만 해도 배를 타며 아이와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광장의 물길을 따라 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세비야 사람들에게 이런 보물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나도 그렇지만 세비야의 밤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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