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Apr 06. 2024

여수 금오도

여수 금오도에 와 있다. 이곳은 힐링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보통 때라면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감상하며 만끽했으련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역시 마음이 어지러우면 보이는 것도 그렇다.

4월 금오도는 흐드러지게 핀 산벚꽃을 비롯하여 이제 막 순이 나기 시작하는 나무들까지 해서 연둣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도 사방에서 벚꽃이 툭툭 터지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내게 일어난 일은 가장 비극적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또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런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다가도 당최 종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막장 드라마를 생각하거나 인생을 자포자기하자는 건 아니었다. 며칠간 정말 드라마틱한 날들을 보냈다. 폭풍이 지나간 후, 주변을 보니 완전 초토화되어 있었다. 다시 일어서자는 마음으로 일에 몰두하면서 극복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머리와 몸은 따로 노는지라 어떤 부분은 아직도 헷갈리는 중이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폭풍이었으니 감당하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마음에 난 상처들은 여전하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를, 아니 단 10분을 어찌 사나 싶었는데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고민이나 걱정을 해서 될 문제라면 100번이라도 그래야겠지만 그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한가득이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잘 나가다가 이간질과 모함 때문에 선조에 의해 압송되고 고문을 받고 다시 백의종군, 그리고 명량과 노량해전까지. 그 와중에 어머니를 여의고 자식까지 왜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다 겪은 셈이다.

만약 치졸하고 옹졸한 인간이었더라면 억울하고 분하다며 이를 갈거나 자포자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분은 달랐다. 몸을 추스르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큰 그림을 그렸다, 자신보다 수십 배로 몰려든 왜적을 섬멸하고 대승을 이끌어냈던 명량해전만 해도 더 그렇다. 보통의 경우라면 줄행랑을 치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핑곗거리는 충분했고 변명하자면 얼마든지 이유는 댈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비 온 후에 땅에 더 굳어진다고 한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난 후에 다시 일어나는 사람일수록 더 단단하다, 이미 바닥을 보았기 때문에 더 두려울 게 없다. 신은 우리를 시련으로 이끌어 더 단련시키신다. 어떤 이는 그 과정을 이겨내고 보석이 되고 어떤 이는 박살이 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니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그 힘으로 이 고비도 이겨낼 것이다.

금오도에는 동백들이 꽃비처럼 떨어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시간을 다시 또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게 또 하루를 허락하셨듯이, 앞으로 내게 펼쳐질 세상도 충분히 그러리라 믿는다. 그게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은 디저트고 삶은 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