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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05. 2024

여행은 디저트고 삶은 밥이다

          

아는 이가 이 말을 했을 때 정말 확 와닿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다른 면이 보였다. 한때 나는 반대로 생각하며 살았다. 여행은 밥이고, 삶은 반찬 같은 거라는 느낌으로 평생을 살았다. 밥이 없으면 죽어도 반찬이 없다고 죽지는 않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내 시선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꽂혔다. 



올해로 해외여행을 떠난 지 34년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혼자 45일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났다. 배낭여행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다. 당시는 민주화 열풍으로 나라가 뒤끓던 시기였다. 군에서 제대한 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떠났다. 그 여행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다 보면 삶의 현장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던 것들이 돌아오고 나서도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나는 올해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다. <사진과 함께 떠나는 여행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내 주변에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여행 홀로서기를 준비하자는 게 내 기획의 골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 게 사진이라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특히 핸드폰이 사진기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이제는 밥을 먹을 때도 멋진 풍경을 볼 때도 너나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보니 양이 사진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는 그래도 고심하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나중에 인화를 해보니 사진이 엉망이었다거나 심한 경우, 필름을 넣지 않고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었던 일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찍고 본다. 나중에 지우면 되지 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에서 돌아와 사진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인도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사진을 보니 무려 5,000장 가까이 찍었다. 물론 다녀와서 정신 차리고 바로 정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사진에 파묻혀 허우적댈 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고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돌아온 후, 기껏해야 한두 번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니 핸드폰에 사진은 쌓이는 데 정리를 안 하니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사진을 찍을 때는 심혈을 기울여서 찍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감정이 퇴색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다. 

한때 가족들과 동유럽 패키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아침은 A, 점심은 B, 저녁은 C라는 나라에서 먹는 특별한 경험을 할 거라고 했다. 일정표에도 나와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그 나라들이 어떤 나라였는지 기억하려 했으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다녀온 곳이고 사진도 찍었지만 연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 특별한 경험은 이후 내가 기록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여행을 하면서 그때 느꼈던 느낌을 짧은 메모나 글로 정리해 두면 나중에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기 때문에 나처럼 평범한 이는 시간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기록을 남기거나 음성으로 녹음을 해두면 그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있다. 그렇게 한 덕분에 나는 여행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고,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현지에서도 글을 쓰는 편이기는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메모나 음성을 들으면서 다시 여행을 떠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나 역사적인 사실을 자료 찾으면서 다시 환기시키는 일이 적지 않다. 글을 쓰면서 맞이하는 여행지의 느낌은 더 특별하다. 이때 내가 찍었던 사진을 글과 연계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여행잡지에 글을 연재하다 보면 디자이너와 의견이 다를 때가 종종 생긴다. 한글 파일과 사진 파일을 넉넉하게 보내면 그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선별하여 배치한다. 문제는 그들이 여행을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서가 뒤바뀌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편의 글이 온전하게 세상으로 나온다. 독자들은 내가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맛보기는 힘들다. 비록 사진과 글이 어느 정도 소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꼈던 장엄한 풍경이나 아찔한 장면을 어찌 다 소화할 수 있겠는가. 가끔 편집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건 동영상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달에는 <Tour de Monde> 특집호로 이탈리아 소도시 기행이 실린다. 거의 40페이지 달하는 분량이 내가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채워진다. 아직 책을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니 비중이 제법 크다. 내게는 단독 저서를 낸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체험이다.  



내게 여행지에서 만난 기억들은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자산이다. 나는 힘들 때, 삶이 팍팍하고 고단할 때 이 기억들을 꺼내 본다. 그러면 다시 살아갈 힘이 난다. 여행은 디저트고 삶은 밥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여행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아침을 시작한다. 어차피 우리 삶도 긴 여행이지 않던가!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여행 중인 셈이다. 그 여행을 어떻게 끝맺을지는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아무도 그 결정을 대신 내려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부디 멋진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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