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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07. 2024

내려놓아야 보인다


운전하는 내게 아내가 묻는다.     


맹자께서 어떤 사람이 가장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셨는지 알아?     


맹자라면 성선설을 주장했던 중국학자가 아닌가. 나는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이 떠올랐다. 내가 ‘측은지심’이라고 답하자 아내가 말했다.      


맞아, 측은지심. 그 마음이 있으니 살 수 있는 거지.      


맹자는 이 ‘측은지심’을 우물에 아이가 빠지는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남의 불행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일이다. 혼자 장시간 운전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요즘은 걸핏하면 눈물이 난다. 



이번 주 내내 우리 부부는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다. 지금 아내가 어떤 마음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 짠하고 안쓰럽다. 나 혼자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하겠지만 가장 가까운 이가 그 고통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다. 졸음이 쏟아진다며 보조석에서 지쳐 잠이 든 아내를 보는 일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번에 힘든 일을 겪으면서 잃은 것도 크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내에 대한 달라진 내 시선이다. 결혼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내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졌다. 아마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밤새워 쓴 글을 보내줘도 도무지 답이 없었다. 읽었다는 신호만이 메아리 없는 아우성처럼 다가왔다. 물론 바빠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보니 점점 심드렁해졌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는 글을 보내도 아내에게는 보내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어차피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혹 아내가 칭찬을 하기는 했다. 짧은 한두 줄이었지만 이게 웬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평소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아내가 하는 칭찬은 더 무게가 있었고 나를 하루종일 기분 좋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로 비판적인 이야기도 들려왔다. 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한방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신에게는 그런 한방이 없다는 말이 주 내용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달리 내가 해결할 방법은 별로 없었다.  



사실 내가 보는 아내는 비판적인 안목이 탁월하다. 세상을 보는 눈도 나보다 정확하다.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힘도 있어서 옆에서 보고 있으면 부럽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글도 잘 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가끔 아내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는 토론을 이끌고 갈 때나 특강을 할 때, 나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나마 내가 다른 점은 무엇이건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버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아는 이와 유부도에 가기로 했다. 내 처지를 아는 이가 의기소침해 있을 나를 생각해서 권유한 것이었다. 전에 유부도에는 다녀온 적이 있다. 철새 천국이라는 유부도에서 나는 철새 대신 쓰레기만 잔뜩 보고 왔다. 새들의 천국을 인간들의 쓰레기가 점령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만날 유부도는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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