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Apr 13. 2024

왜 우리는 인정에 인색한가?

당대에 인정받기 힘든 것들

빈센트 반 고흐도 그랬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작품만을 팔 수 있었던 불운한 화가는 그 처절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의지했던 동생 테오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고뇌와 예술세계를 토로하였다. 화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인 붓과 물감, 그리고 캔버스는 생명과 같다. 당시 물감 등이 그렇게 저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동생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고흐의 미술세계는 진작에 꺾였을 것이다. 

그에게 그림은 살아 있는 의미이자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진 방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가 미친 듯이 그림에 몰두했던 건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지 않았을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발악에 가까운 외침이 그에게는 강렬한 터치로 쏟아낸 그림이었고 좌충우돌한 그의 삶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그가 생의 마지막을 불살랐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에 간 적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내 심장을 멎게 만들었던 오베르 교회는 그림과 느낌이 너무 달랐다. 이런 평범한 교회를 살아 숨 쉬는 교회로 창조해 낸 화가가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그가 살아 있을 때 조금만 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가끔 그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아를의 정신병원이며 마지막 생을 마감했던 우아즈가 떠오른다. 사람이 그리웠던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3번의 만남, 3번의 이별 

살면서 나를 사로잡았던 고흐의 그림을 3번 보았다. 오베르 교회를 다룬 그 그림을 34년 전, 오르세 미술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한참 그 앞에 머물렀다.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감히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파리를 생각하면 그 그림만 생각이 났다. 두 번째는 런던 SOAS에서 학술발표할 기회가 있어서 갔을 때였다. 여전히 그림은 나를 설레게 했지만 감동의 강도는 조금 더 옅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코로나 전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였다. 이번에는 좀 무덤덤했다.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이 떠올랐다. 세 번째는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파리 근교에 있는 우아즈를 일부러 찾아간 것도 고흐 때문이었다. 처음 오베르 교회 그림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쓸쓸한 마지막 때문이었는지 우아즈에서는 모든 게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즐겨 그렸던 밀밭에는 그의 작품이 세워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생과 함께 누워있는 무덤이 자꾸 눈에 밟혔다. 형이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동생도 죽었다. 우애 깊던 형제는 죽어서나마 같이 누워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이중섭 역시 가난에 시달렸다. 그가 그렸던 은지화는 이전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기는 하지만 궁핍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어쩌면 풍요로웠더라면 그의 은지화는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중섭 또한 살아생전 일본에 있던 아내와 두 아이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 절절한 그리움은 그가 남긴 작품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월던>으로 유명한 소로의 글 역시 당대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소로는 사후에 국민작가 수준으로까지 인정을 받고 그가 남긴 <시민 불복종>이 간디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재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소로가 살아 있을 때도 그의 오두막을 찾은 이들이 적지 않았고 가끔 강의도 했지만 사후 영광과는 비할 수 없다. 

우리가 산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가끔 지금 잘 살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 때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들을 떠올린다. 그 처절했던 시간과 그들이 사랑했던 세상을, 그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삶의 흔적들이 그리워진다. 

나는 감히 그들이 지나온 세월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내게도 언젠가 희망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그리고 내 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치를 잠시 부려본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 언젠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챗GPT, 위기인가 기회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