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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7. 2024

기억이 사라지기 전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그때는 정말 좋았는데 나중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기억이 살아 있을 때 써야 하는 데 쓰지 않고 미루다 보면 나중에는 막연한 기억만 남는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사진을 정리하고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면 원고까지 쓸 여력이 남지 않는다. 그렇게 1주일, 2주일이 지나면 하기 싫은 숙제처럼 여행기는 길을 잃는다. 여행지에서 그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쓰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메모라도 남겨 놓은 경우는 그나마 낫다. 그것도 없으면 사진이 유일하게 추억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만 팍팍하기 짝이 없다.      





일본 중부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가나자와, 시라카와고, 도야마 일원을 다녀왔다. 6월 초였는데 14~15m의 눈이 길옆에 쌓여 있었다. 2400m 눈 쌓인 산길을 지나 들어선 산장에서 맞이하는 온천욕은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게다가 식사로 나온 음식이 예술이었다. 산장에서 보았던 한여름 수십 개의 텐트 사진을 보면서 다음에 온다면 조금 여유 있게 즐겨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쳤다.      



시라카와고의 추억 또한 잊을 수 없다. 이 지역 또한 한번 눈이 오면 장난이 아니라 했다. 그래서인지 시라카와고의 전통 가옥은 짚으로 만든 지붕 두께가 2m에 달한다고 했다. 규모 또한 압도적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눈 쌓인 시라카와고는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다. 다음번에는 겨울에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곳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지역의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다녀왔던 곳 중에서 쓰지 않은 곳이 있었다. 바로 다까야마였다. 시라카와고 근처에 위치한 다까야마도 나름 분위기가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도 이곳은 막상 글로 쓰려니 써지지 않았다. 한두 번 시도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그래서인지 다까야마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 이후에는 악착같이 메모를 하거나 녹음을 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그런 기억들은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글을 쓸 때 도움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강의를 다니거나 여행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그때 느낌이나 단어들을 반드시 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 실마리가 나중에 글을 쓸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사진을 보고 쓸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내 경우에는 사진이 글로 자연스럽게 변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내 가슴속에만 남겨둔 여행지가 제법 많다. 남은 기간 동안 이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행지가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한다. 그래도 30년 넘게 여행을 다니면서 나 혼자만 알고 지내는 것보다 다른 이와 나눌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싶어진다.     


올해는 상반기까지는 해외여행할 계획이 전혀 없다. 하반기에 잡지사에서 팸투어가 있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도 여행을 떠올린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직 내 가슴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여행이야기가 많이 살아 있다. 그들과 만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 하루빨리 세상으로 끄집어 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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