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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8. 2024

죽음을 맞이하는 새로운 방식


누구나 살면서 가슴 철렁한 일을 여러 번 겪는다. 그중 하나는 가족과 이별하는 일이다. 뜻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도처럼 오는 비보는 강심장이라도 감당하기 힘들게 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며 할 수도 없다. 시대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든 겸손해진다.    

  

언젠가 아는 이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그분 사연을 듣고 시로 써서 드린 적이 있다. 나중에 화장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시를 읽고 감동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시 한 편이 힘든 시기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시에 고인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가니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은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몇 차례 있기는 하다. 대개는 부조만 하기 그래서 그때 장례식장에서의 느낌을 시로 건넨 경우였다. 장례식장에서 그분이 어떤 마음일까, 떠나는 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쓴 시였기 때문에 받는 입장에서는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부고 소식을 듣고 시를 써놓고도 드리지 못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난 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사람들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진짜 힘들 때는 우연히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도 큰 힘이 된다. 임계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큰 고난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글이 힘이 있다는 말은 기쁘거나 행복할 때만이 아니라 힘들고 위로를 받고 싶을 때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경우, 남은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데 글이나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시한부 삶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나온다.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는 어린 자식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먼저 떠나야 했던 아내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아렸던 것은 그만큼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느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이 든 부모님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들어 요양병원에 가면 다시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집이 요양병원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예전에 어르신들 대상으로 교육을 나가서 유언장 쓰기나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 남기기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어색하고 내용이 딱딱했다. 대개의 경우는 자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겠지만 일부는 넋두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는 자신의 진심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데 서툴다. 하지만 그분들에게도 남은 이들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최근 아는 사진작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진작가는 영정사진이 없어서 급하게 준비해야만 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다.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여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가 죽기 전에 아는 이를 불러 감사파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감사했다는 사실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사실 죽고 난 후에 조문을 받아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전에 고마운 이들, 보고 싶은 이들과 만나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더 의미가 클 것이다.      


우리 둘의 마음은 후손을 위해 전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이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모아졌다. 누군가에게는 노년의 환한 모습일 수도 있고, 가족에게 남기는 글이거나 시일 수도 있다. 비록 아직 세상에 없는 서비스지만 이런 서비스를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다른 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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