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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22. 2024

친절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곧 6월이다. 해마다 6월이면 나는 도야마 알펜루트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도로 양옆에 거대한 눈이 쌓여 있고 갇혀 있는 듯한 도로에 버스 한 대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모습을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마치 컴퓨터에 CG를 입힌 느낌이었다. 게다가 6월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며칠 고민하다가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나고야, 그런데 가야 할 곳은 나고야가 아니었다. 나가노현에서 알펜루트로 가는 게 맞았는 데 어찌 된 일인지 엉뚱한 곳으로 가버린 셈이었다. 어쩐지 안내소에서 몇 번이나 설명을 하더라니. 결국 나고야에서 도야마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우연히 도야마라는 지역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나고야도 구경을 했으니 엉뚱한 곳으로 착각한 셈치고는 손해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나고야에 대한 추억도 건졌으니 나로서는 남는 장사였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여행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내게는 여행지의 멋진 풍경도 좋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의 인연이 더 오래 남는다. 그중 압권은 동구권에서 만난 한 대학생과 가족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동구권과 국교를 맺은 상태가 아니었다. 우연히 여행을 하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체코와 헝가리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비자는 대사ᅟ관에서 받고 나중에 갔다 온 후 귀국해서 신고를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약간 두렵기도 했으나 내친김에 가보기로 했다.    

  


체코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상자를 찢은 종이에 5$를 써서 들고 서 있었다. 당시 하루 숙박비였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거지처럼 살다가 동유럽에 가면 왕자처럼 지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인포메이션에 갔더니 숙소로 어느 대학교를 알려주었다. 물어물어 갔더니 숙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입구에 계속 서성였더니 대학생 하나가 사정을 물어봤다. 마침 자기 룸메이트가 오늘 오지 않는다고 같이 자자고 했다. 그런데 경비가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닌가.       


그 친구가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라면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는가 라며 강하게 따진 끝에 그 방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시내에서 패스트푸드를 사는 것으로 방값을 대신했다. 거리를 함께 걷는데 동유럽의 자유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말과 함께.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제법 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국의 자유화 운동이 탄압받는 현실에 대해, 그 친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또 한 번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던 중이었다. 시간이 늦어 버스가 끊어질 때가 되었는데도 내가 가는 게 맞는 것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늦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모르면 무조건 묻고 몸으로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버스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내가 물어보자 잘못 탔다며 그중 한 명이 나와 함께 내렸다. 그러더니 친절하게도 내가 가야 하는 버스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미 30년도 훌쩍 지난 일이기도 하고, 잠깐 보았기 때문에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보여주었던 친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전에 체코에 갔을 때,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으나 카알 대교만 기억날 뿐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에게 베풀었던 친절이 여전히 고맙고 반갑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친절했던 나라와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기억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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