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 왔다.
굳이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난 이유는 일출시간이 5시 21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새들은 해뜨기 30분을 전후로 해서 많이 운다. 이론대로라면 4시 50분에 만나야겠지만 정해진 게 아니다 보니 조금 넉넉하게 시간을 잡는 게 좋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일행들과 4시 30분쯤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새벽 12시가 넘게까지 원고를 쓰다 잤기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했다. 지금도 졸다가 보니 1시를 훌쩍 넘겨서 부랴부랴 원고를 쓰고 있다. 나는 야행성에 가까울 정도로 밤에 강한 편이다. 아침에는 비실비실하다가도 저녁 무렵이면 평소보다 더 머리가 맑아지고 글에 집중하기도 쉽다. 반면에 새벽시간이나 아침시간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티기 어렵다.
나에게 아침에 글을 쓴다는 것은 가수나 성악가들이 아침에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은 목이 잠겨 있는 시간대인 아침에 노래 부르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니 새벽시간대에 기상한다는 것은 그날 하루를 망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밤을 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아무튼 새벽시간에 우리는 만났다. 일행 중 몇 명을 제외하고 다 나왔다. 그중에는 새벽에 새소리를 듣는 게 처음인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가 언제 우는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심한 경우, 어떤 이들은 새가 우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새벽에 해뜨기 전, 30분을 전후로 새 울음소리는 가장 많고 다양하다.
챗 GPT는 새가 아침에 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 영역 표시: 많은 새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이를 다른 새들에게 알리기 위해 울음소리를 냅니다. 새벽 시간은 특히 조용하고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 배우자 찾기: 번식기 동안 수컷 새들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울음소리를 냅니다. 이 시간대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잠재적인 배우자에게 자신의 위치와 건강 상태를 알리는 좋은 방법입니다.
- 소음 경쟁 감소: 새벽은 인위적 소음이 적고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시간대입니다. 이 시점에 울면 다른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 일상 리듬: 많은 새들은 생체 리듬에 따라 특정 시간대에 활동하고 소리를 냅니다. 새벽은 이들의 활동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울음소리를 내게 됩니다.
- 날씨와 기후 조건: 새벽 시간은 대개 공기가 차갑고 안정적입니다. 이로 인해 소리가 더 멀리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새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더 넓은 범위로 소리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 사회적 상호작용: 새들은 울음소리를 통해 다른 새들과 의사소통을 합니다. 새벽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무리를 형성하거나 다른 무리와 상호작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포식자 회피: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오면서, 새들은 포식자들이 활발해지기 전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 먹이 찾기: 새들은 새벽에 일찍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먹이를 찾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울음소리는 먹이 찾기와 관련된 의사소통을 도와줍니다.
- 습관 형성: 새들도 특정한 시간대에 울음을 터뜨리는 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습관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지며, 진화적인 이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챗GPT는 내가 알고 있던 사실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언젠가 녹음한 새 울음소리를 들려주면 인공지능은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로 그게 무슨 의미인가도 알려주는 세상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새벽시간대에 산에서 만났던 적막과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던 새 울음소리가 주던 기쁨을 대신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는 새벽 시간대에 열 개 정도의 새 울음을 만났다. 되지빠귀, 딱새, 박새, 호랑지빠귀, 때까치, 노란 턱멧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동박새, 진박새, 쇠박새. 간혹 귀에 뚜렷하게 들리는 소리도 있었으나 대개는 미지의 언어처럼 들렸다. 새소리를 구분하게 되면 그때부터 새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린다고 한다. 새가 우는 방향, 새울음의 높낮이, 거리 등이 차별화되면서 들린다는 뜻이다. 언제쯤이나 무딘 내 귀는 그 소리들을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