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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25. 2024

가끔 내 안에서 빛나는 것들

자연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나는 비록 50대에 자연을 만났지만 너무 늦지 않게 만났다는 점에서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자연을 알아가면서 나무나 야생화를 만날 때도 감동이었지만 나비를 만났을 때도 다른 세상을 만났다. 이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새도 마찬가지였다. 


군산 장자도에서 만난 산자고


강원도에서 만난 모데미풀


평생을 살면서 야생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던 게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피어 있는 산자고를 만났을 때의 감동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봄이 시작하기 전, 복수초와 얼레지, 노루귀와 바람꽃을 만나러 가는 날도 좋았다. 한편으로 사진 찍느라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버린 산자고를 보았을 때의 아쉬움도 컸다. 




작년에는 나비를 보러 태국과 일본에도 다녀왔다. 살면서 나비를 보기 위해 해외를 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강원도에 공작나비를 보러 갔다가 내리 사흘 동안 헛물만 켜다 온 일도 있다. 어떤 날은 날이 흐려서, 어떤 날은 기온이 올라가지 않아서 그렇게 공작나비 그림자도 못 보고 왔다. 내 인생 나비라 할 수 있는 붉은점모시나비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나비이다. 멋진 날개로 글라이더가 활강하듯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한 감동이 있다. 


일본 홋카이도 대설산에 사는 황모시나비

                               한국(남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쐐기풀나비



나비 이름조차 모르고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다가 오기는 했지만 치앙다오 국립공원과 치앙마이 계곡을 날아다니던 수많은 나비는 잊을 수 없다. 일본에서 황모시나비를 만나기 위해 2000미터급 산을 두 번이나 올랐던 것도 기억이 난다. 만약 보지 못했더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운이 좋아 두 번째 산행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남한)에서는 사라져버린, 기록상에만 존재하는,  쐐기풀나비와 상제나비를 만난 것도 내게는 큰 감동이었다. 


                                                     쇠부엉이가 오는 만경강


같은 동네에 사는 박샘과 새를 보러 가던 날도 좋았다. 평소 자동차로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만경강을 몇 차례나 오가면서 쇠부엉이를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몇 시간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건 기다리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매번 그 기대를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쇠부엉이를 본 날은 변을 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넘쳐흘렀다. 


다른 새들도 그렇지만 동박새를 보았을 때의 설렘도 오래갔다. 그 외에도 금산사의 노란턱멧새, 밀화부리, 할미새, 새만금 지역에서 만난 말똥가리와 잿빛개구리매를 비롯하여 철원에서 만난 재두루미, 순천의 흑두루미, 주남저수지의 재두루미, 우포의 따오기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수라> 때문에 유명해진 오동필 선생과도 새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새를 좋아하는 이를 곁에 둔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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