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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03. 2024

생명을 키운다는 일

어렸을 적, 집에서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는 무언가를 키워본 적이 없다. 다른 집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기도 한다지만 나는 그럴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아파트에서는 그런 동물을 키우는 자체가 민폐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몇 가지 곤충을 키운 경험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누에를 키웠다. 어느 날 아내가 직장에서 누에를 데려왔다. 아주 어린 꼬맹이들이었다. 주말을 맞아서 데려온 모양인 데 먹이가 문제였다. 다행히 집 근처에 뽕나무가 있어서 두어 차례 먹이를 구하러 갔다 왔다. 어린 녀석들은 어린잎을 먹어야 하는 데 억센 잎들만 있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양이 엄청난 만큼 먹어대는 속도도 빨랐다. 제법 많이 구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먹어치워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지낸 후, 녀석들은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다시 데려왔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더니 아내는 몇 마리를 집에 남겨 두고 나머지를 데려갔다. 뽕잎을 주기는 했으나 기온이 올라가서인지 잎들이 금방 말라버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한참을 굶었는지 비실거렸다. 아무래도 다음날까지는 버티기 힘들 듯하여 한밤중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만약 산이었더라면 가지 않았을 테지만 다행히 집 근처였다. 



마른 잎을 치우고 뽕잎을 주니 정신없이 먹는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예전에도 홍점알락나비 애벌레를 키울 때, 먹이를 구하기 위해 팽나무 잎을 수시로 따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잎을 먹으면서 몸집을 불려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가 따로 없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번데기로 변한다. 다음은 우리가 아는 나비로 변하는 우화가 이어진다. 이때에 변수가 많이 발생한다. 만약 기생벌 등에게 기생을 당했다면 나비는 불가능하다.. 번데기에서 나오는 동안에도 날개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어제만 해도 부지런히 먹던 녀석들이 한 마리만 빼고는 고치를 틀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누에고치를 보기는 했어도 눈앞에서 그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다. 인류에게 실크라는 선물을 선사해 준 누에고치를 눈앞에서 보는 일은 당혹스러우면서도 감격스럽다. 그나저나 고치를 튼 녀석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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