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갑자기 노트북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내심을 시험하더니 점차 프로그램 하나 다운로드하고 검색하는 데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상태가 더 심해지면 시간을 내서라도 노트북 A/S 센터를 가야 하나 싶었던 차였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은 7번째이다. 아니면 8번째일 수도 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 처음 구입했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노트북을 구입할 때는 화면 위주로 생각했다. 노트북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화면 크기와 용량이었다. 구입하면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컴퓨터 사양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검색할 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컴퓨터를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993년 무렵, 석사논문을 쓸 때 컴퓨터를 설치하러 온 기사분이 이 정도 사양이면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거라고 했다. 그때 컴퓨터 하드 용량이 350메가였다. 지금은 테라까지 쓰는 시대이니 가끔 그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아저씨는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러나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노트북이 버거워한다는 걸 느낄 정도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작업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더 그걸 느끼고 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노트북 사양은 i3와 i5 모델이다. 이전에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 위주였으나 최근 들어 미드저니, 챗GPT 등을 많이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도 점차 과부하를 느끼던 중이었다.
같이 일하던 소 작가가 내 컴퓨터 작업을 지켜보더니 사용상태를 점검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화면상에 현재 CPU를 100% 사용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내 노트북이 평소에도 나 때문에 혹사당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쩐지 프로그램을 돌릴 때마다 버거워하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우리는 흔히 기계는 쉬지 않아도 되고 계속 일을 시켜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기계도 쉬고 싶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발열이거나 속도가 느려지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사실 이 징후가 나타나기 이전에 징후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야 감지했다는 게 속상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데도 무딘 감성이나 무관심 때문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부랴부랴 몇몇 파일을 삭제하고 나니 노트북이 한결 편하게 돌아간다. 말 못 하는 기계라고 얼마나 혹사했던가를 떠올리며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 얼마나 무리하게 혹사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만 해도 심할 때는 거의 20시간 가까이 일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나 스스로 즐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얼마나 몸에 무리였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잠시 컴퓨터 속도가 느려진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급하게만 달려온 내 삶도 점검하고, 느리게 사는 의미도 떠올려 보았다. 이제는 노트북이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런 세상도 받아들여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 마음에 그날이 올 수 있도록 조금은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최첨단 IT 대신에 자연을, 빠른 속도 대신에 느림을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