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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09. 2024

보리굴비의 추억


일본 드라마 중에 <고독한 미식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원작으로 해 2012년부터 방영 중이며 평범한 직장인 아저씨가 혼밥 하면서 음식을 음미하는 소박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음식에 감탄하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음미하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인데도 얼마나 음식에 진심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오늘 함께 활동하는 작가 모임에서 점심으로 보리굴비를 먹었다. 통상적으로 조기를 말린 걸 굴비라 칭하고, 이를 통보리에 넣어 숙성시킨 걸 보리굴비라 한다. 보리굴비라는 명칭은 굴비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찬 성분의 보리에 넣어두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사실 요즘 식당에서 파는 건 엄밀한 의미의 굴비가 아니다. 부세를 보리굴비라는 이름으로 바꿔 파는 것이다. 굴비로는 그 가격에 음식을 낼 수 없기에 식당에서는 비슷한 맛의 부세를 대체제로 사용한다.      


굴비와 얽힌 유명한 이야기로는 구두쇠로 유명한 자린고비가 있다. 이 사람이 지독한 구두쇠인지라 식사 때는 소금에 절인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은 후 밥 한 술에 굴비 한번 쳐다보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아들이 두 번 쳐다보자 짜다며 구박했다고 한다. 형이 두 번 보았다고 동생이 이르자 “오늘은 생일이니 그만둬라!”라고 했다는 후일담도 전한다.       


굴비는 장기 보존을 위해 조기를 말린 것에서 유래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옛사람들은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조기를 바짝 말렸다. 이 과정에서 기름이 과도하게 배어 나오거나 해서 상품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자겸이 영광 법성포로 유배 왔을 때, 이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자신을 유배 보냈던 인종에게 진상으로 올렸다고 한다. 이때 “진상은 해도 굴한 것은 아니다.”라고 적은 것이 굴비屈非의 유래라는 설도 있다. 

     

나는 보리굴비를 광주에서 처음 먹었다. 강의를 나간 학교에서 선생들끼리 식사를 하러 갔는 데 그때 시킨 음식이 보리굴비였다. 바짝 마른 굴비를 먹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를 녹찻물에 말아 밥에 올려 먹는 것도 처음 경험하였다. 문화충격이었다. 이후 종종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보리굴비를 먹었다. 지역과 식당마다 조금씩 조리법도 다르고 맛도 달랐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한 식당을 만났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식당은 군산에 있던 일식 전문식당이다. 평소에도 입맛이 없거나 이 굴비가 진짜 먹고 싶으면 1시간을 달려 일부러 가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 식당에서 보리굴비를 먹은 날이면 그날 피로가 다 풀리고 먹는 내내 행복감에 젖을 정도였다. 신기한 게 혼자 먹을 때와 여럿이 먹을 때 맛이 달랐다. 아무튼 한동안 인생음식이라 할 정도로 좋아했다. 가끔 포장도 해서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전맛이 나지 않았다. 왜 그런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주인장도 바뀌지 않았고 여전했는데 맛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가보았지만 옛맛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가서 역시나 하고 후회하며 돌아와야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슬펐다. 여행을 다니면서 음식에 그다지 진심이 아닌 나로서는 무언가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보리굴비집을 순회하면서 어느 순간, 내 입맛의 한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데 오늘 보리굴비를 먹은 것이다. 작가들 모임에서 보리굴비라니. 그동안의 만남은 고깃집이나 찌개가 있는 식당에서 만났던 게 대부분이다. 고급진 식사라거나 신선한 느낌이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식당은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내 나는 그 옛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그 보리굴비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마 다시 그 식당으로 간다고 해도 예전 그 맛을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굴비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을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렇게 아쉬움과 그리움을 안고 우리는 늙어간다. 아련한 추억들은 왜 더 그리워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건 아마도 내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일 것이다. 추억의 보리굴비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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