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가 되었던 꼬리명주나비는 총 6마리가 우화(羽化)하여 5마리가 나왔다.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다만 날개가 완전히 펴지지 못한 우화부전이 일부 나왔다. 자연상태에서 우화(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하는 과정에서도 날개가 완전히 펴지지 않을 수가 있다.
나비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장자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나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비는 스스로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에 훨훨 날아다니며
스스로 나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꿈에서 깨어보니 내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내가 된 것인지
자그마한 번데기 안에 갇혀 있던 나비가 날개를 펴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게다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더 멋지다. 그 좁디좁은 번데기에 있다가 나온 나비의 크기를 보면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이다. 그 작은 공간에 나비가 숨어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눈앞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을 보는 일은 놀라움 자체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자체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나비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화하기 직전에 번데기의 색깔이 짙어지거나 변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비가 언제 나오는가는 우리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한다.
오래 나비를 보아온 이들도 우화를 직접 보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들도 우화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잠시 잠든 사이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흔하다. 그만큼 눈앞에서 나비가 나오는 걸 보기 힘들다. 나는 예전에 일행 중에서 산호랑나비 번데기를 가져오는 바람에 운 좋게 눈앞에서 우화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번데기 아래부터 조금씩 열리더니 마침내 날개가 나왔다. 처음에는 축축하고 흐느적거리던 날개는 시간이 지나자 빳빳해졌다. 나무에 매달려 쉬던 녀석은 잠시 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후로 녀석을 본 적은 없다.
한 번은 청띠제비나비가 우화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나무를 둘러싸고 숨을 죽이며 나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번데기가 열렸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나비는 한쪽 날개가 굽은 채로 세상에 나왔다.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화부전의 상태로 나비는 세상에 나왔다.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한 채로 썰물처럼 사라졌다. 아마도 나비가 나오기 전에는 기대감이, 나오고 난 후에는 실망감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세상으로 나온 나비는 일주일 남짓한 세월을 살다가 간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다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비 성충으로 변하는 변신을 거듭한다. 어쩌면 우리도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번데기를 벗어나 나비로 화려하게 변신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우화부전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날고 싶어한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은 날고 싶다. 지금은 그때를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하늘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