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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23. 2024

깨작깨작 해서 보내주면 안 돼?

우연한 기회에 조경 관련 수업을 들었다. 

지역에서 이틀에 걸쳐 진행하는 강좌였다. 내가 이 강좌를 알게 된 건 아내 덕분이다. 내가 들었던 대부분의 좋은 강의는 아내가 소개해준 것들이다. 이번에도 아내가 신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덩달아 같이 신청했다. 또 다른 이유는 스케치를 한다는 내용이 있어서였다. 



수업 시간에는 그동안 내가 알던 조경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습까지 더해져 내용이 풍성했다. 조경하는 이의 철학이 어우러져야 멋진 작품이 나온다는 사실도 새로 알았다. 우리 조상들도 하나의 공간을 조성할 때 자신만의 미학을 반영했다. 나는 예전에 다녀왔던 담양의 소쇄원과 영양의 서석지에 대해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탄했다. 그동안 어설프게만 알고 지냈던 세상과는 다른 세계가 거기 있었다. 한마디로 공간의 재발견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진행하던 강사님이 강의 도중에 지인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지인이 전화를 해서 한참 안부를 묻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전화한 용무를 말한다고 했다. 바로 공모전을 내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설계도면이 필요해서 전화를 한다는 거였다. 그것도 사진을 보낸 후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대충 깨작깨작해서 보내주면 안 돼?     


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전화한 이들은 당신은 전문가니 대충 펜으로 슥슥 선을 긋고 몇 번 물감으로 칠하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자신은 말 한 번 하면 되지만 직접 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몇 시간이 걸릴지, 며칠이 걸릴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말 한마디로 퉁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걸 그냥 입만 가지고 부탁하다니 참 대책이 없다. 더군다나 전화받는 상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부탁을 받는 이가 몸이 안 좋거나 정신없이 바쁜 상황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은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사정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조금만 시간을 내면 될 텐데 그까짓 걸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들을수록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글 쓰는 이에게도 비슷한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본인은 대충 봐달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되는 일은 없다.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대개는 원고료나 교정료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말로 부탁하는 경우이다.      


직장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단지 국문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고를 교정한다거나 수정을 부탁하는 일이 잦다. 물론 대개는 무보수이다. “나중에 밥 한 번 살게!”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밥을 먹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그렇게 뭉개고 넘어간단 말인가.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체 그 배경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불러서 일을 시키면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그걸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잡지나 신문에서 원고 청탁을 할 때도 원고료는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당신의 원고를 우리 지면에 실어주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심지어 원고료나 교정료에 대해 이야기하면 돈을 밝힌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그러니 작가들도 속물 취급을 받기 싫어서 받을 정당한 대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십 년을 계속하다 보니 청탁하는 쪽에서 주면 좋고 안 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 굳어져버린 모양이다.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워서라고 넘어가기도 했다지만 오늘날까지 그 논리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배려 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이 직접 해본 사람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다. 그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탁하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은 할 수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제발 모양새 있게 부탁 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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