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노스탤지어

나의 넷플릭스 유랑기-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by 주시오

요 며칠 새 오징어 게임, 겟 아웃, 어스 같이 침침하고 뭔가 기괴하고 기분 나쁜? 영화들만 보다가 디톡스가

필요할 것 같아서 넷플릭스를 접속 1989년 작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디톡스 용으로 틀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작품성은 내가 논할 부분이 아니고, 이렇게 밍밍하고 단조로운 내용으로도 작품상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내용도 특별할 게 없어서 굉장히 까칠하고 이유 없고 개연성도 없이 화를 잘 내는 유대인 늙은 할머니 데이지 여사가 극구 반대하지만 원치 않게 아들이 고용해 준 흑인 노인 드라이버 호크와 함께 다니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지고 결국에는 노인정에서 평생의 우정의 단짝은 호크였음을 깨닫는 내용이다. 혹자는 이 커플이 할리우드 영화 역사 상 가장 특별한 커플 중 하나라는데, 둘의 사이는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고, 뜨끈한 노년의 벗 정도 되시겠다.


어찌되었 건 내 입장에서 호크는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고용주의 어머니인 데이지 여사의 모든 짜증 수발을 다 듣고 있는데, 의무감에서 비롯된 강제적 헌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강한 의무감과 비자발적인 헌신이 지속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소소로운 이벤트를 겪고... 자발적인 헌신의 마음이 생겨나면서 호크는 운전기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까탈스러운 데이지 여사의 집에 들러 그녀의 안부를 묻고, 노년기의 그녀가 머물고 있는 노인정에도 찾아간다. 노인정에서도 친구하나 사귀지 않고 꿋꿋이 혼자 지내는 데이지 여사도 나중에는 호크가 자신 인생의 진정한 친구였다며 속마음을 고백한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지점은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방향으로 익어가는 관계의 참 맛을 보여줌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관계라는 것이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참 많이 느낀다. 물리적으로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낸다고 하여, 그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부라서 한 평생을 함께 살았다 해도 서로 이렇게 까지 다른가 깨닫고 계속하여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부부들도 많다. 관계는 같이 보낸 시간의 총량보다, 함께 겪어가는 이벤트 속에서의 질적 변화의 총량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이벤트를 함께 겪는 과정에서 상호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때, 강한 본딩이 형성된다. 영화에서도 데이지 여사의 유대인으로서, 드라이버 호크의 흑인으로서의 겪는 은연중의 차별과 편견이 서로를 깊게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질적 변화의 토양이 되어준다.


관계의 소중함이 점차 퇴색되는 요즘, 사람들은 상호 간 본딩을 강력하게 해 줄 이벤트를 함께 겪어갈 의지도 시간도 없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느리게 관계를 쌓아가는 미덕을 보여주는 영화의 호흡은 지루하며 감내해야 할 수양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드라이버 호크가 왜 빨리 일을 때려치우지 않고, 저 데이지 여사의 몰상식을 다 받아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가 몰려온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일까? 데이지 여사가 부러우면... 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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