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을까?
나는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다.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하기 싫고 보기 싫은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것조차 고역으로 생각되며 하고 싶은 것은 해도 해도 재밌고 강박적으로 몰입하며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매일매일이 똑같은 대화라도 습관적으로 함께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이 호불호 강한 성격은 점점 두각을 나타내더니, 나이가 들수록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 시간이 무한정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여지껏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보지 못했기도 하고, 단 1분 1초라도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고로... 변명이 길었지만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 언저리 저 언저리를 유랑하며 계속 놀고만 있다.
여러 번 생각했는데, 나는 역시 현재까지는 이렇게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물론 이 글 속에 나의 모든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서술할 수는 없기에 순도 100%로 말 그대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는 크게 지출을 하고 있지는 않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는 이렇게 놀고만 있어도 생활이 굴러가기는 하는 상황이다. 언제 또 이렇게 놀아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지금의 이 자유로운 생활이 더 소중하기도 하고, 이렇게 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었다.
노는 것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어른들은 논다는 말과 같은 선상에 붙여지길 꺼려한다. '으른'의 논리로는 논다는 것이 은연중에 무가치하다, 생산성 없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와 병렬한다. '나 놀고 있어'라고 말하면서도 나 역시도 스스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으른들도 노는데 조금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혹자는 가장 행복한 상황은 공부와 놀이 일이 통합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는 것이 일이 되어 금전적인 소득을 발생시키고 이것이 삶에 대한 공부가 되어, 셋이 상호 보완, 성장하는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는 일! 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놀이가 되기 어렵다. 놀이라 함은 본디 자연스러운 성격을 지녔고, 기존의 사회질서를 깨는 위반의 성격 또한 가졌기에 일과 놀이는 상충되는 지점이 많다. 하지만 놀이의 또 다른 미덕인 '자기 목적성'의 관점으로 보면 말 그대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자의적으로 한다는 시각으로 보면 일도 어렵사리 놀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일은 하긴 하되, 내가 자발적으로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다음 고민은 자기 목적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평생 놀 면서 지내는 꿈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