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이면 저는 수업을 들으러 명륜동으로 향합니다. 공대생인 저는 율전동에서 수업을 들어야하지만, 마지막 학기 기념, 금요일 마다 서울 여행이나 가자는 마음으로 덜컥 명륜동 캠퍼스의 교양과목을 신청했습니다. 어쨌든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도 서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버스부터 지하철까지 장장 2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매번 이 시간을 잘 써보고자 하지만, 딱딱하고 뻗뻗한 버스, 지하철 의자에서 휴대폰이 아닌 책에 쉽사리 손이 가진 않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고, 문과생들이 드글 거리는 강의실에 수원에서 온 촌스러운 공대생이 조용히 자리 합니다. 제가 신청한 교양과목은 '미디어와 윤리'라는 과목인데 기자 출신의 교수님이 수업하십니다. 수업계획서와 과목명을 보고 큰 기대를 하고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그날도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수업이 재미없었다는 얘기입니다) 3시간의 다소 따분한 강의가 끝나고 저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강의실을 나서자, 서울의 전경이 보였습니다. 삐쭉 솟은 남산타워 옆에 제각기 다른 모습의 빌딩들이 펼쳐져있습니다. 빌딩의 테두리를 이어, 하늘과 도시의 경계를 나눕니다. 흔한 도시의 모습이라지만, 아파트 일색인 우리나라에서 종로의 도시 풍경은 다소 색다릅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몽롱해진 기분이, 다소 좋아진 이유입니다. 오늘 점심메뉴는 오면서 이미 결정했습니다. 바로 '홍순두부' 입니다. 명륜동 캠퍼스에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입니다. 이곳을 저는 졸업을 겨우 5개월 앞두고 가보네요. 교수회관 옆 쪽문을 나섭니다. 높은 언덕을 자랑하듯 끝없는 계단을 내려와 좁을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기다리던 오늘의 밥집이 등장했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먹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인기 식당 답게 촘촘히 자리 잡고 있는 식탁들은 이미 학생들로 붐볐습니다. 어쨌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시켜야합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마치 여기를 많이 와봤다듯이 막힘없이 버튼을 누르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차돌순두부를 누르고, 라면사리가 왜 무료인지는 의아했으나, 라면사리를 추가해 주문을 완료했습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라면사리는 서비스인것 같습니다. 공기밥은 무한리필인데 콩나물, 김가루 양념장을 넣고 비벼먹을 수 있게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을 흘긋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소박하고도 단순한 그렇기에 강력한 음식들을 좋아합니다. 콩나물에 김가루를 넣고 볶음 고추장이 비비면 뭔들 맛없겠습니까.
저는 사실 미각의 편차가 크지 않아, 맛있는걸 먹어도, 맛없는 걸 먹어도 비슷하게 느낌입니다. 맛없는 걸 먹을때는 축복 받은 입맛이겠으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땐 저주 받은 입맛이죠. 그런 점에서 '맛집'은 저의 큰 약점입니다. 이렇든 둔한 저의 입맛에 순두부찌개의 맛은 말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사실상 '맛있다', '맛없다' 이 두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저의 입맛에는 어쨌든 합격점입니다. 무한리필의 은혜를 받아, 배불리 먹고 나와 바로 앞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보였습니다. 약한 감기기운 택에 코끝이 약간 간지러웠지만, 그냥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가게를 들어갑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보는데, 국화빵이 보였습니다. 이때 '국화빵'은 길거리 그 음식이 아니라, 국화 모양의 빵 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쑥모찌, 팥 앙금이 순서대로 들어간 빵 아이스크림입니다. 그냥 먹고 싶어져 바로 결재해 포장지 위를 부욱 찢어 버리고, 한손에 들고 가게를 나섭니다.
가게가 언덕 중간 즘 위치해 내리막을 터벅터벅 내려오며, 아이스크림을 한입 한입 먹는데 문득 지금 되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요즘 바쁘다보니, 금요일 마다 오는 서울이 때로는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약간 서늘한 날씨에 길거리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은 저말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몸에는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입안에는 그것보단 더 찬기가 도는데 이상한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바빠죽겠는 4학년 마지막학기, 굳이 서울에 와서 감기에 걸려놓고, 서늘한 날씨에 아무도 안 먹은 아이스크림을 먹고있으니, 역설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구나 느껴졌습니다. 그게 되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실실 웃으며 그 내리막길을 내려왔습니다. 그래 기분이다, 신나는 노래도 들으면서 말이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그리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국화빵 하나면 충분한 거구나. 나이를 먹고, 현실을 마주하고 조금은 계산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국화빵 아이스크림은 저한테 계산할 필요 없다고, 그냥 하고 싶은거 하라고 문득 저를 응원해줍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버리고, 오로라를 보러 떠날순 없는 노릇이지만, 추운 날씨, 혼자 아이스크림 먹으며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정도의 자유는 가지고 싶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