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절반 즘을 지나고 있는 지금, 청춘의 낭만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랜만에 혜화동 길거리를 거닐어 보았습니다. 날씨는 조금 풀려서 입고있는 겉옷이 약간 무겁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간 제일 좋아하던 식당은 대학 새내기들로 가득 차서 결국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큰길로 걸어나와 흘러간 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25살, 4학년, 19학번. 대학생이지만 학교보단 사회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학교의 끝, 사회의 출발에 서있는 저는 학교에서의 낭만을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사회'라는 더 넓은 들판에서의 낭만을 꿈꿔봅니다. 학교는 저에게 '화석'이라는 별칭을 달아주었지만, 다시금 저는 사회의 '새내기'가 될테니까요.
19살 최장섭의 낭만은 '연극동아리', '혼자여행가기', '휴학하고왕창쉬기' 따위의 것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러분도 비슷하지 않았나요? 이러한 낭만들을 하나하나 해보며 깨달은 점은 그러한 일들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컵닭강정을 먹으며 주변을 바라봤습니다. 앞에는 빛바랜 벽돌이 쌓인 서울대의대가 보이고, 뒤에는 붉은 벽돌로 뒤덮인 아르코 미술관이 있습니다. 그 사이 나무를 둘러싼 간이 밴치에 25살의 내가 앉아있습니다. 문득 '그냥' 여기 앉아 닭강정을 먹고 있는 내가 낭만적이게 느껴집니다. 온갖 사회적 낭만에 둘러싸인 19살의 최장섭보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혼자 닭강정을 먹는 최장섭이 낭만적인 이유는 그 모습이 더 '그냥 최장섭'에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낭만'에 목매는 청춘은 청춘 그대로의 모습대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때로는 별거 아닌, 고리타분한 장면들이 더욱 낭만적이게 느껴지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겁니다.
저는 올해 여름 아마도 포항으로 떠날겁니다. 그곳에서 나머지 20대를 전부 보낼 생각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어옵니다. 동시에, 이 곳에서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교차하는 두가지 감정 속에서 19살, 25살, 그리고 31살의 낭만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