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달라진 걸.
20대 시절, 힘이 들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흐려질 때마다
가끔씩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어려지면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 있을 텐데."
친구들과 밤까지 놀고 세상 목적 없이 즐겼던 어린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간다면,
주어진 두 번째 기회에 다신 그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후회하고 한탄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들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아빠, 다시 어려져서 우리 유치원으로 와."
자초지종은 이렇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손수 만들어 온 털실 가방을 보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나머지,
"아빠는 왜 유치원에서 저런 것을 안 했을까? 아빠가 다닌 유치원 별로였다!"라고 했더니,
"그럼 아빠도 다시 어려져서 우리 유치원으로 와. 다시 하면 되지! 어려져서!"
그런데 그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답이 튀어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 다시 유치원생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고 말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멈칫,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아빠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지금 여기서 너하고 네 동생 챙겨야지.
너하고 동생 다 클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잘 살아야지. 아빠 없으면 너희 어떻게 살아."
그리고는 나중에 너희들을 다 키우고 나서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면
그때 노인들이 가는 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대신 가겠다는 말로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부모는 그런가 보다.
행복에 기준, 사랑의 기준, 그리고 편안함에 기준이라는 것이
부모가 되기 전과 되고 난 후, 차이가 너무나 크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니 나도 예전에는 육아에 항상 지쳐있는 부모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었다.
개인 시간도, 하고 싶은 운동도, 그리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까.
그런 것들 못하는 부모들이 어떻게 보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몸이 힘들고 정신이 지치는 것을 몇 단계나 뛰어넘은
뭔가, 알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의 존재라는 것이 있고,
부모들은 그 사랑을 마음껏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이고,
그 사랑을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아먹으며 자라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거 같다.
그래서, 너희를 두고 절대로 다신 어려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