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불시착 김택수 주인장과의 일문일답
"회사가 망한 것도 책방하기 위해서였지 않을까요" - 오마이뉴스
올해의 첫눈은 낭만을 삼켜버린 폭설이었다. 동네책방 '지구불시착'은 직접 쓰고 그리면서 책을 펴내는 김택수 작가의 아지트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공릉동에 불시착 한 건 첫눈을 가장한 폭설이 그치고 난 11월 30일 토요일이었다. 2023년 가을에 찾아갔던 스토리지앤북앤필름 로터리점에서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성수기도 없는데 비수기라니>였다. 김택수 작가가 언제나 비수기인 책방의 시간을 온몸으로 견디며 써 낸 문장들이 나를 지구불시착으로 이끌었다. 후암동의 서점에서 그 책을 만나고 1년이 지난 지금 김택수 작가와 마주 앉아 지구불시착에 관한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 제가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성수기도 없는데 비수기라니> 책 덕분입니다. 책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책방은 견디는 게 일인지도 모릅니다. 경제의 땅에서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비즈니스의 세계를 살짝 빗겨서 보면 낭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지기의 느슨한 하루와 책방을 오래오래 하겠다는 다짐을 꾹꾹 눌러 글을 썼습니다."
- 책 쓰고 그림 그리는 책방 주인장이 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운영하던 회사가 점차 기울고 마침내 영업 종료를 선언할 때쯤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그려 왔던 그림들로 전시하고 그림책을 만들면서 독립 출판을 알게 됐습니다. 독립 출판을 만들고 동네 책방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가 알던 세상의 패턴과 사뭇 다른 감각의 세계였습니다. 책방을 운영하게 되고 독립 출판을 알리는 과정에서 책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책방에서는 보이는 게 그림과 글이라서 책방지기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 지구불시착을 시작하기 전의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무역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거래처에서 돈을 회수하지 못 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무역 회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짐이었던 게 아닐지 생각합니다. 지금은 책방 9년 차가 됐습니다. 회사가 망한 것도 이유가 있다면 책방을 하기 위해서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 그림에 대한 관심과 소질이 상당하신데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는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림은 전공도 아니고 회사에 출근해서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 마침 옆에 종이와 펜이 있어서 그리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드라마틱한 시작의 배경이 저도 많이 궁금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림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야가 많이 다양해진 덕도 봤습니다. 미술가나 아티스트의 배운 그림보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그림까지도 좋아해 주실 만큼 시장이 다양해진 혜택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책방이 공릉동에 불시착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독자들한테 동네 자랑 좀 해주세요.
"공릉동은 전국 마을공동체 최우수 사례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마을공동체로 전국의 여러 마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는 마을입니다. 저도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단지 주소만 공릉동이었습니다. 출퇴근 하는 장소였는데 책방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마을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없던 마을과 문화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그런 익숙함을 여러 곳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을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릉동 사람들은 스스로 어린이 축제와 청소년 축제를 만들고 장애인과 어린이들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어려운 일도 재밌게 기획할 줄 알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우동사잡스'라는 기획은 우리 동네 사람들의 잡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일 체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행사입니다. 마을에 있는 다양한 직군에 사장님들이 모여 기획하고 마을여행단이 아이들을 모아 코스별로 아이들을 인솔합니다. 가게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이 가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아이들이 하는 일을 어떤 일이라는 설명을 하면 코스를 다 돌고 한자리에 모여 자기가 일해보고 싶은 직종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아이들이 직업의 현장에서 일을 경험해 보는 우동사잡스는 매해 참가하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참가하는 가게에 우동사잡스라는 멋진 현판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 책방을 처음 오픈했을 때와 현재의 출판시장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제가 아는 책방의 세계는 아주 작은 세계라 출판 시장에 대한 거대 담론은 죄송하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책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천천히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느낍니다. 책은 아주 보수적인 이미지로 지적이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마음의 양식이고 하는 말들을 이제는 좀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꼭 읽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그냥 여러 가지 이유로 좋아만 해도 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 지구불시착의 도서 큐레이션 기준은 무엇인가요? 독립출판물만 취급하시는지요?
"지구불시착은 큐레이션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로 생각합니다. 지구불시착은 손님들이 큐레이션에 참가하는 책방입니다. 단골을 지구불시착 관계자라고 하는데 관계자들은 "사장님 이 책 들여다 놓아요. 잘 팔립니다" 하는 정보를 줍니다. 그럼 저는 사다 놓고 하는 거죠. 지금 서가는 여행, 가족, 사랑, 표지가 멋진 책 등의 섹션이 있는데 아쉽게도 봄 큐레이션입니다. 아직 봄인 이유는 관계자가 아직 바꿔놓지 않아서입니다. 빨리 겨울 큐레이션이 돼야 하는데..."
- 독립출판물의 가치와 영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독립 출판물에 가치와 영향력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만들어 봤는데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거죠, 실제로 이런 경우가 종종있고요. 뭔가 독립 출판 하나로 작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친구도 생기고 좋지 않습니까?"
- 동네 책방마다 특색있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책을 파는 일 말고 지구불시착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은 무었이 있나요?
"지불문학상이란 것을 만들어 봤습니다. 질문이 많을 것 같아서 정식 명칭은 문의 불가 지불문학상입니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동네책방을 꾸려가시는 입장에서 현 정부의 출판문화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어느정도 라고 생각하시는 지요?
"모르겠습니다. 관심과 지원보다 그들이 책을 좀 읽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