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청양투어 '비로소 보이는 것들' (3)

3. 재밌는 일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나보다

by 이양고

1. 밤을 줍고, 마을 축제에 참가하고


오늘의 첫번째 일정은 농가돕기.


청양에는 밤나무가 가득 심긴 농가가 많다.

하지만 밤을 주워낼 인력이 부족해, 해마다 그대로 썩어가는 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일손을 돕기 위해 알바를 구하고 싶어도, 막상 이곳에서 일할 청춘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청양으로 찾아온 우리가 그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 보기로 했다.




밤이 맛있게 익는 계절, 가을.

9월에서 10월, 절기상 백로가 지나면 밤송이가 점차 열리기 시작해 땅에 떨어지는데,

이때 밤을 수확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실제로 밤을 줍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무에서 밤송이가 자주 떨어졌고,

떨어진 밤송이에 맞을 뻔한 적도 있었더랬다.




어릴 적 동네 뒷산에 산책을 가면, 주머니에 밤 두어 개쯤을 꼭 넣어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다들 포대를 하나씩 들고 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밤을 주웠는데,

가을이라 해도 햇볕이 꽤나 따가워 밤을 줍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다.


장갑을 끼고 쉴 새 없이 밤을 줍다 보니 꽤나 쌓인 밤이 담긴 포대들.

사실 이야기 나누며 쉬기도 하고, 중간중간 웃고 떠들며 놀기도 해서 그리 많은 양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기쁘게 다가왔다.






밤 줍기를 도운 대가로 탐스럽게 열린 배와 메론, 꿀, 그리고 약간의 밤을 얻어왔다.


가로등조차 드문 시골 촌구석에서 자란 나는
밤을 줍고 벼를 거두는 바쁜 가을을 자주 보며 자랐다.

오랜만에 농촌에 들어와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어린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가을이면 끊임없이 들리던 트랙터 소리,
분주히 오가던 마을 어른들의 발걸음.
그리고 수확이 넉넉하게 끝나면
그것들을 나눠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던 이웃들까지.


그때는 그것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고,
가을이면 으레 당연한 풍경이라 여겼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다만 그 모든 것이 농가의 인심이었다.






열심히 일한 우리는 차에 올라타 식사를 하러 갔다.

오늘의 점심은 짬뽕집.


점심 메뉴로 국밥과 중국집을 고를 수 있었는데

몇 명의 남자들만 국밥을 먹으러 가고

대부분 짬뽕집을 골라 다함께 중국집으로 왔다.






1인당 1만 원까지 사용할 수 있었기에 대부분 차돌짬뽕을 선택했다.
어젯밤 맥주를 마신 탓에 국물이 간절했던 나도 망설임 없이 짬뽕을 골랐다.


내 입에는 꽤 맛있게 느껴졌는데, 국물이 약간 삼삼한 편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싶었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담백하고 은은한 국물을 선호한다면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다음 일정은 '청년 창업 사례 강의'

어떤 청년이 청양에 정착했고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뭘까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서울 출신 소 대표님이 청양에서 자리를 잡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특강을 듣는 장소는 첫날에도 왔던 "찰리와 고추빵공장"





찰리와 고추빵공장에는

'고추' 관련 굿즈가 많은 편인데,

멤버 중 한 명이 고추옷을 입고 있길래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번 기수 멤버 중에 두 명이 저번 달에도 청양을 왔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번 한 명은 저 고추옷을 입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하긴. 어디 가서 고추 옷을 입어보겠어.


이때 고추빵도 처음 먹어봤는데

모양이 맛있고 맛이 귀여웠다.





처음 청양 투어를 시작했을 땐,
소 대표님이 표정도 약간 우울(?)해 보이고 힘이 없어 보여서
‘대표님이 왜 저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시지?’ 했는데,
창업 사례 강의를 듣고 나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서울 출신인 소 대표님은
태권도 관련 일을 20년이나 해오다가

(20년 동안 같은 도장을 다니셨다고 했다)
우연한 계기로 청양에 내려와 창업을 했고,
벌써 4년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이력을 듣고 나니, 오히려 멋있게 보였다.


"서울서 자란 제가 몇 년 전부터 청양에서 살면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지만, 저 같은 청년이 청양 같은 농촌지역에 살기 위해선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2주살기 프로그램에 이어 올 2월 청양고추를 활용한 고추빵 가게를 열게 됐습니다."

24일 오후 충남도립대 인근에 있는 '찰리스 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소철원 대표(32)를 만났다. 소 대표는 서울서 나고 자라 태권도 사범을 하던 서울 청년이다. 28세에 사범을 그만두고 제주도 1년살이를 하며 농촌에 살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고, 2021년 7월 청양군에서 실시하는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청양군과 인연을 맺었다.
| 출처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42510292821128




힘 없는 얼굴인데 태권도를 오래 했고

심지어 기획력이 좋은 사람이라니.

괜히 대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누구를 보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청년 특강을 듣고 난 뒤, 다음 일정은 칠갑산 야간 트레킹이었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비어 청양에서 열리고 있던 ‘호러페스티벌’을 구경하러 갔다.


마을에서 축제가 열린다니 들뜬 마음으로 갔지만
생각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즐기는 모습이 보여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꾸준히 축제를 만들고, 지역 사람들이 함께 즐긴다는 것.
사실 그것만으로도 축제는 이미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 페인팅을 할 수도 있었고,
코스프레 의상도 준비되어 있었으며,
공포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의령에서 축제 기획을 하며 지내다 와서 그런지, 더욱 확 와닿았다.


사실 이렇게 축제를 하나하나 꾸려낸다는 게
얼마나 많은 힘과 정성이 드는 일인지,
그리고 그만큼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껴졌다.





축제를 구경하다가 근처 시장을 둘러보러 길을 나섰는데, 함께 가겠다고 한 사람들이 많아 우르르 몰려갔다.


오늘 저녁은 야간 트레킹 후 야식을 먹기로 했기에
시장에서 미리 주전부리를 해야 했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마주친 건 어묵이었다.


한 개에 500원짜리도 있고, 1000원짜리도 있어 가볍게 먹기 딱 좋았다.


나는 마지막 날 포항 사는 친구 차를 얻어 타고 대구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고마운 마음에 그 친구에게 어묵을 사주었다.


시장 길거리 음식을 도대체 얼마 만에 먹는 건지.
게다가 함께 먹으니 얼마나 더 맛있던지.






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씨앗고 보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인형도 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다양한 생물도 보고.


혼자서도 시장 구경하는 걸 좋아하지만

함께 보니까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면에서도 좋았다.






시장에 오면 꼭 꽈배기를 먹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꽈배기와 도넛을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들뜬 마음으로 다가가 꽈배기를 사 먹었는데,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자 사장님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서울, 대전, 전라도, 경상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왔고 지금은 청양을 투어 중이라고 말씀드리자,
사장님은 한 봉투를 더 내어주시며 청양에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시장이라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
얼굴만 스쳐 지나는 우리에게도 기꺼이 베풀어주시는 온정.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 꼭 홍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장님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미소 지으셨다.


이렇게 베풀며 살아가는 곳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부터 잘 베풀며 살 수 있어야겠지.




시장에서 다시 축제 장소로 모이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어미를 잃은 듯 삐약거리며

사람들을 향해 울고 있었는데,

흰 양말을 신은 듯 네 발이 다 하얗고,

너무나 작은 그 고양이를 만약

집 근처에서 보았다면 데리고 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나는 차로 5시간은 이동해야 하고,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으며,
지금은 의령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으니 데려올 수 없었다.


함께할 수 없는 게 당연하고,
안 데리고 간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그저 모른 척하고 돌아서는 게 너무 아팠다.


길냥이 출신인 나물이와 함께 살고 난 뒤로는
모든 길냥이들에게 자꾸 부채감이 든다.
‘저 고양이들도 좋은 집사를 만나면 행복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다시 모인 우리는 인생네컷도 야무지게 남겼다.

야외에서 찍는 인생네컷은 처음이었는데,
실내가 아니다 보니 조명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얼굴이 시커멓게 나오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분명 좋은 추억으로 남으리라는 걸 아니까 괜찮았다.






2. 체력이 좋은 게 아니라 재밌어서요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해가 진 뒤 야간 트레킹을 하러 칠갑산으로 향했다.




야간 트레킹은 난생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두워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발밑에 집중하느라 목이 뻐근해졌고
긴장하며 걷다 보니 눈까지 피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으샤으샤하며 걷는 건 즐거웠다.

혹 뒤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멈춰 서서

곧 끝이 보인다는 응원을 주고받으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청양에서 느낀 게 많았지만, 야간 트레킹에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다 같이 하면 뭐든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

특히 힘든 일일수록 함께일 때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야간 트레킹을 하며 생각했다.

만약 다음에도 비보투어 2기를 모집한다면,
그때에도 꼭 함께하고 싶다고.





정상을 찍고 내려왔을 때, 기록된 운동 시간은 두 시간.


나는 선두 쪽에서 속도를 내며 열심히 걸었는데,
역시 몸에 무리가 갔는지 하산 후 차에 타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칠갑산으로 향할 때만 해도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갔는데, 올 때는 땀을 잔뜩 흘린 뒤라 그런지 한껏 지쳐 있었다.

원래도 멀미가 심한 나는 산을 탄 뒤라 더욱 상태가 나빠져, 결국 중간에 주유소에 멈췄을 때 한바탕 헛구역질을 하고 앞쪽 자리로 옮겨 앉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어야 했지만, 속이 너무 뒤집혀서 도저히 먹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땀에 젖은 옷 그대로 이불에 누워

멀미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이불을 덮고 누워 있으니, 같은 조였던 수경이가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멀미가 심해 쉬고 있다고 하니, 잠시 뒤 여자 스태프분이 오셔서 필요한 게 있냐고 물으셨다.

소화제를 하나 먹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잠시 후 저녁과 함께 소화제를 2층으로 가져다주셨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
아플수록 아주 작은 친절에도 크게 감동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 3박 4일 동안 청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때 생각했다.
결국 나는 다시 한 번 청양에 오게 될 것 같다고.





약을 먹고 계란찜과 주먹밥을 조금 먹으니 속이 한결 가라앉았다.
그래서 1층에서 하하호호 웃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슬쩍 내려갔다.


1층 공용공간에는 식사가 이미 끝나 잠시 소강 상태였는데, 밖에서는 새우와 전어를 굽고 있었다.


새우는 스태프 분이 준비한 게 아니라
멤버 중 한 명이 시장에서 직접 사 온 것이었는데,
함께 나누자며 사 온 그 마음이 참 고맙고 어여뻤다.


새우를 굽고 있자니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새우를 구워 먹는 풍경이 무척 낭만적이었다.


물론 속이 울렁거려 많이 먹진 못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새우를 굽고, 전어를 굽고, 안에서는 배와 메론을 깎아 바깥 사람들과도 나눠 먹으며 마지막 밤 같은 축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야간 트레킹을 다녀와 피곤할텐데,
아쉬움이 남은 사람들은 자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1층에 남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 역시 그 마음이 같아, 새벽 네 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깊은 이야기도 아닌, 시덥잖은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할 줄 몰랐다.


나는 사실,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여기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