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청양투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

2. 나 다음에 청양 또 올래

by 이양고


1. 아, 이거 트래킹 투어였지.


숙소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 땀에 젖은 옷을 중간에 세탁할 수 있어 좋았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다들 고개를 들어주세요 (마피아ver.)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잠귀가 밝은 나는 잘 수 없었다.

당연하다.

혼자 사는 방에서도 아주 작은 소음에 깨는 나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내가 그런 사람이 나니까.


피곤해도 일정은 소화해야만 한다.



오늘의 첫 일정은 '비보 트래킹'

방문자 센터에서 청양 읍내까지 걸어가는 게 목표였다.


비가 안 와서, 선선한 가을이라서 다행이었지만 해가 쨍쨍해서 걱정이었다.

탈 게 뻔하니 선스틱으로 목과 팔에도 꼼꼼하게 발랐지만 땀이 나니 선크림이 실시간으로 지워지는 게 느껴졌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조끼를 입고 나선 트래킹.


러닝화도 챙겨왔고, 선스틱도 발랐다.
중간 지점마다 스태프가 차량을 몰고 대기하고 있어
‘이 정도면 할 만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날씨는 맑고, 가을 바람은 선선했다.


창밖 풍경을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니
눈과 마음에 직접 새겨지는 듯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차로는 결코 볼 수 없었을 수많은 풍경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번 투어 이름을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 지은 이유를.





고추로 유명한 청양의 버스 정류장도 보고,

어쩐지 친근한 간이 정류장도 보았다.


한곳에만 붙박여 살아왔던 나는

퇴사 후 다양한 지역을 다니고 있고,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때로는 누군가를 만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과 시선을 넓히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마다 다른 삶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기도 한다.


4년 동안 회사에 다닌 시간도 분명

나를 크게 키워줬지만,
퇴사 후 여러 지역을 다니는 지금은
날마다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더욱 선명히 느낀다.


지역마다 다른 특색,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다.



16명이 함께 걸어도 걷는 속도와 보는 풍경과 느끼는 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들 저마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걷는데,

나는 수다에 집중하기 보다는 걷고 주변 풍경을 마음에 담는 것에 집중했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으므로.




이번 투어에는 공통 과제와 개인 과제가 있었다.

개인 과제는 블로그나 SNS에 후기를 올리는 것이고,
공통 과제는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 팀은 나, 환희, 신원, 수경.
네 명이 모여 영상을 어떻게 찍을지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팀들도 삼삼오오 모여 영상을 준비했다.


다들 다양한 방법으로 릴스를 찍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뒷모습을 가닥으로 잡아 찍었다.



첫 번째 쉬는 시간에는 모두 열정적으로 촬영을 했지만, 두 번째 쉬는 시간부터는 다들 급격히 지쳐갔다.
물론, 나도 포함이었다.


하필 마법의 날이라
오래 걷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데,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골반 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세번째 쉬는 지점에서 확실하게 생각했다.

3박 4일을 제대로 보내려면

오늘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9시에 출발한 트래킹은 1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총 세 시간을 꼬박 걸은 셈이다.


트래킹 투어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걸을 줄은 몰랐는데, 막상 걷고 나니 뿌듯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라서 좌충우돌하는 일이 많았다.
뻔히 실패할 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괜히 뿌듯해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는
다치기 싫고 힘든 게 싫어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고
그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왔는데,
이번에 세 시간을 꼬박 걷고 나니 해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했다.






오늘의 점심은 청양에 있는 일식집!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도 청양에 와 정착한 청년 중 한 명으로, 최근에 오픈한 신상 맛집이었다.


한편, ‘로컬창업 힐링투어’는 청양군이 지원하는 상생투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매년 청년 유입과 창업 아이디어 발굴에 기여해왔다. 지금까지 청양과 홍성 등 충남 지역에 청년 정착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왔으며, 실제로 청양에 정착한 한 참가자는 ‘퐁당청양 사회적경제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하이루’라는 일식당을 운영하며 지역 청년 창업 성공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출처 : 충청뉴스(http://www.ccnnews.co.kr)


다양한 지역을 다니다 보면, 그곳에 정착해 가게를 운영하는 청년 사장님들을 만난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와서 자리를 잡는 그들의 패기와 용기가 참 멋지게 느껴진다.


나로서는 아직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일.
하지만 언젠가 나도 경상도를 떠나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어디에 다시 정착하게 될까, 문득 고민하게 된다.



밥을 먹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길에 보게 된 고양이들.

가게 사장님께서 풀어놓고 키우는 고양이 같았는데

어찌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털에 윤기가 흐르고 포동포동 살이 올라있었다.


이런 시골 길냥이들은 바깥에서 자유로움도 느끼고 굶지도 않으니 갑갑한 도시에 사는 고양이들보다도 때론 행복해보인다.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2. 아무것도 없는 시골인데 이렇게 재밌을 수가



어젯밤 잠을 못 잔 데다,
세 시간을 걸은 게 무리였던 탓도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원하는 사람만 걷고,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차를 타고 숙소로 먼저 돌아가기로 했는데 나를 포함해 다섯 명 정도가 그렇게 돌아왔다.


오전 내내 트래킹을 하며 땀을 많이 흘렸지만 씻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러다 다른 멤버들이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리에 깼을 때,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음 일정은 전통주 만들기 체험.

오전에만 걸은 나는 3시간 밖에 걷지 않았지만,

왕복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거의 다섯시간 가까이를 걸었을 텐데도

지각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전통주 체험을 하러 향했다.


(다들 체력 정말 대단하시다)



전통주 체험을 하러 가는 길에 본 댕댕이들.

아마 근처 농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들 같았는데

사람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우리가 우르르 걸어갈 때도

한 번 짖지도 않고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듯 함께 걸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우리와 함께 걷던 개들은

우리가 전통주 체험을 하러 학교로 들어가자 한 바퀴를 스윽 둘러보더니 다시 제갈길을 가버렸다.

자유로워 보여서, 굶지 않은 듯 마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건강하게 자유롭게 살기를.





천하태평 술학교는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전통주 체험 공간인데 미리 우리를 위해 세팅을 해두셨다.




증류기에 원주로 쓸 막걸리를 붓고, 냉각기에 찬물을 채운 뒤 가열을 시작했다.

막걸리 속 알코올은 물보다 끓는점이 낮아 먼저 기화되는데, 이 증기가 관을 타고 냉각기를 지나며 다시 액체로 응축된다. 이렇게 모인 투명한 액체가 바로 증류주다.


각 팀이 모여 증류를 시작했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섬세했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알코올만 기화되는 게 아니라 막걸리 자체가 부글부글 끓어 넘쳐 역류해 버리고,
반대로 온도가 너무 낮으면 알코올이 증발하지 않아 한 방울 떨어지는 속도조차 더뎌진다.

그래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알코올만 고르게 뽑아내는 게 핵심이었다.


실제로 다른 팀들은 대부분 온도를 잡지 못해 막걸리가 역류해버렸지만, 우리 팀은 끝까지 술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안전하게 불을 낮춰둔 탓에, 결과적으로 소주 반 병도 채우지 못했다는 게 함정이었다.ㅎ




전통주 체험을 끝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칠흑 같이 어두운 거리라 혼자 걸었으면 분명히 무서웠을 것 같은데 다 같이 후레시를 켜고 걸어가니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어두운 밤을 걷는 일이 잘 없으니 약간 신나는 기분도 들었다.


역시. 뭐든 같이 해야 재밌는 법인가보다.



오늘의 피날레.

바베큐 파티.


고기와 소시지, 버섯을 잔뜩 굽기 시작했다.



오후 트래킹에 이어서 전통주 체험까지 바로 하고 온 터라

다들 배가 고픈 얼굴로 앉아 있으니 스태프 분들이 열심히 고기를 구워 테이블에 올려주셨다.


이런 게 또 펜션의 맛이거든.


나는 개인적으로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바깥에 앉아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자주 가는 동생은
숙소만큼은 편하고 쾌적해야 한다는 주의라 펜션에 자주 가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엔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바깥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으니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첫 번째 사진은 순천에서 올라온 친구가 숯을 만드느라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내내 숯만 만지작거리니,
동생들이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는 장면이다.


여러 명이 쌈을 싸다 보니 순서가 꼬여 동시에 쌈을 만든 친구들이 생겼고,
순천 친구가 입에 있는 음식을 다 삼키면
다음 쌈을 넣어주겠다며 기다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쌈을 들고 대기하는 두 명의 동생과
묵묵히 숯을 굽는 순천 친구의 모습이
마치 삼각관계처럼 보여서, 사진을 찍으며 한바탕 웃었다.


두 번째 사진은 팀별 영상을 찍는 장면인데,
불 앞에서 하트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그 순간을 담아두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결이 같을 수 없기에

잘 안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튀는 행동을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3박 4일 동안에는 다들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쩌면 트래킹 투어라 내내 걸어서 싸울 힘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에는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불멍을 했다.


여름이었다면 덥다고 금세 흩어졌을 테지만,
가을 끝자락의 선선한 공기는 불멍을 한층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불 앞에 둘러앉은 청춘들이라니.
불에 구운 고구마와 감자라니.
정말, 말 그대로 낭만 치사량이었다.




한참 불멍을 즐기다 보니 장작이 다 떨어졌다.
우리는 하루 종일 걸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다시 1층 거실에 모여 마피아 게임을 신나게 즐겼다.


개인적으로 마피아 게임만큼 시간이 잘 가는 게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하고, 또 그 거짓말을 잡아내는 게임이라
말이 적은 사람도 어느새 스며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게임.


내일 출근을 앞둔 평일이었다면 12시 전후로 잠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금요일 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 가장자리의 펜션에서
우리는 밤이 깊도록 마피아 게임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