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남겨진 사람들의 밤"
이 소설들은 이전에 펀딩으로 선보였던 단편소설집 〈결핍〉에 수록되었던 작품들입니다.
멀끔하게 검정색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답답한 듯이 손가락을 넣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든다. 모처럼 곱게 차려입은 양복이 몸에 맞지 않은 체면치레를 콕 집어 가리키는 듯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불편함을 구태여 숨길 필요 없다는 듯, 남자는 집에서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차려입은 양복 단추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넥타이까지 풀어헤쳐버렸다.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이 밖에서 반복해서 죄 없는 담배만 태워 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검정색 구두 앞코로 바닥을 아무렇게나 툭툭 찍고 찬다.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불안한 사람처럼 담배 연기를 목에 넣었다가 깊이 후- 뱉는다. 공기 중으로 하얗고 탁한 담배 연기가 아무렇게나 부서졌다.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출입구로 오가는 사람들을 본다. 누구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도 잘 떠지지 않을 것 같이 퉁퉁 부은 얼굴로 울상이고 또 어떤 어린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아무것도 모른 채 헤헤, 웃고만 있다. 희노애락이란 이런 것이다. 누구의 죽음 앞에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웃는 것. 절대적인 것도,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편차가 항상 크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는데 장례식장에서는 많은 말이 오간다. 그래, 걔가 저 유부남을 꼬셔서 그랬다잖아. 유부남만 불쌍하게 됐지, 뭐. 죽은 놈이 뭐가 불쌍해? 난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저 애가 제일 불쌍한데. 야, 다 들릴라. 너무 크게 말하지 마. 아무렇게나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어린아이의 손을 붙잡은 여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이 보인다. 방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던 어린아이가 담배를 꺼내 문 엄마를 보고 사색이 되어 인형만 꼭 껴안는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마냥 웃고 있던 어린아이가 제 어머니가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에 사색이 되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산다는 게 뭔지, 죽는다는 건 또 뭔지. 나는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고 얼마 전 해장국을 먹고 후식으로 챙겨왔던 알사탕을 어린아이에게 건넨다.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탕을 건네는 내 손과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제 어머니 뒤로 숨는다. 나는 허공을 본 채 연거푸 담배만 피우는 여자 옆에 사탕을 올려놓고 자리를 뜬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항상 불안했던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쁜 일이 일어나는데, 그 나쁜 일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던 사람이었다. 갑자기 무너져 엉엉 울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며 서 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가 그 모습이 너무 위태롭게 느껴져 물었다. 괜찮느냐고, 차라리 좀 떠나 쉬었다가 돌아오면 안 되겠느냐고. 내 물음에 그저 고개만 젓던 사람. 내가 오래 떠나 있으면 나에게 뿌리를 박고 겨우 서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사람. 결국 그 말을 끝으로 그 사람은 제 손으로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끈을 잘랐다.
영정 사진 속에서 밝게 웃는 모습이 처량하다. 살아생전에도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켠이 시큰거렸다. 뭘 잔뜩 숨긴 채, 가린 채, 지운 채 웃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좀처럼 아프고 힘들다는 말을 안 하던 사람. 뭘 그렇게 숨기며 살았기에, 뭘 그렇게 참으며 살았기에 결국 세상을 등진 건지. 호주머니에 넣어둔 담배를 다시금 피우고 싶어 담배갑을 아무렇게나 꽉 쥔다. 그렇게 웃지나 말지. 사람 좋은 척하지나 말지. 이렇게 떠날 거면 그리워하게 만들지나 말지. 나는 벌써 맑게 웃고 있는 저 사람이 그립다.
시인을 하겠다던 사람이었다. 벌써 수십 번째 온갖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데, 끝까지 도전해볼 거라며 의지를 다지던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떠들며 쓰디쓴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던 사람이었지만 가끔씩 며칠째 집에 틀어박혀 모두와 연락을 단절한 채 살았고, 그렇게 사람들을 걱정 시키던 시간이 길어지다가 신고라도 할까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들 때쯤 잔뜩 야윈 얼굴로 나타나 "나, 이번에도 낙방했어." 하고 힘없이 웃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괜찮냐며 어깨를 다독이면,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괜찮아, 그동안 잘 지냈어? 밥 사줄게, 밥 먹으러 가자." 하며 또다시 다른 사람들을 챙기던 사람. 좀처럼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던 멍청한 사람. 그리움을 잠재울 방법을 몰라 차라리 욕을 하자며 이를 바드득, 간다.
부고 소식을 들은 건 새벽이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여러 군데에서 아무렇게나 돈을 빌린 게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기만 하면 빌린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닦달을 해왔다. 그런 내 사정을 어떻게 전해 들은 건지 몇 주 전 큰돈을 덥썩 내게 건넸고, 받지 않겠다며 거절하자 "누나가 주는 용돈이라고 생각해, 괜찮아." 하고 나를 다독거렸다. 그 돈으로 급한 돈을 다 갚고 나자 나는 또다시 땡전 한 푼 없는 사람이 되었고, 호주머니에 남은 5만 원의 돈으로 함께 밥을 먹었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그 사람에게 밥을 산 건 처음이라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의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그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사람처럼은 안 되더라도, 이 사람이 힘들 때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상하차 일을 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새벽 다섯 시. 평소 나 같으면 술에 절어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깨어 있었고 늦지 않게 그 사람의 부고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문자를 받고도 한참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거짓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이 사람이 맞아? 정말? 한참을 눈을 비비고 문자를 들여다보았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았고,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기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지독한 사실이었다. 장례식장에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입구에서 두 시간째 담배만 뻐끔거려도 도무지, 바뀌는 사실 같은 건 없었다.
맑게 웃고 있는 게 보기 싫어서 다시 밖으로 나와 하늘에 흰 연기만 뿜어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어느새 날이 추워져 담배 연기와 함께 입김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 사람과 함께 해장국을 먹었던 날, 모처럼 무리해서 해장국에 수육까지 시켜 먹었던 날, 그 사람은 수첩을 찢더니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 내게 건네주었다.
나의 구원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다는 건 아프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내가 망가져도 아파 쓰러져도
결국 두 손 탁탁 털고 일어나는 건
벌개진 상처를 딛고 나아가는 건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
학창 시절 너를 괴롭혔던 아무개가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떡두꺼비 같은 자식을 낳고
잘 살고 있더라는 말을 듣고 이유 모를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는 건 내가 감내해야 하는 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강이를 까내리며
사장의 권위를 함부로 휘두르던 사람이
큰 부자가 되어 돈을 긁어모으고 있더라는 소문에
떨떠름한 기분을 며칠 동안 삼키는 일도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어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
입이 찢어져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방황하던 길고양이가 그날따라 기분이 나빴던
폐지 줍는 노인이 재미 삼아 던진 돌에
눈알이 터져 피눈물이 흐르던 모습을
잊지 못해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끼는 일
세상은 영화와 달라 평화롭지 못하다
누구의 구원도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한 번씩 울컥 차오르는 쓰디쓴 수치심과
열감이 도무지 빠지지 않는 죄책감을
그저 마음 깊이 느끼며 하루를 버텨갈 뿐
내가 구원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공모전에 냈지만 낙방한 시 중에 하나라며, 낙방은 했지만 모처럼 마음에 드는 시가 나와 기뻤다며 아이같이 웃어 보였다. 네게 줄 테니 너라도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며 눈가가 젖어들었던 것은 사실 이런 결말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인 걸까. 아무렇게나 대충 찢은 종이에 적힌 시가 아까워, 손쉽게 세상을 등 저버린 그 사람이 안타까워 마음이 절절하게 끓어오른다. "누군가가 구원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떠나버렸나요?"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없어서, 아무리 크게 외쳐도 돌아올 메아리가 없어서, 나는 연약한 그 사람을 닮은 연약한 종이가 혹 찢어질까 소중히 접어 다시 호주머니에 넣는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도록 당신을 못 잊을 것 같네요. 아마 미워하지도 못할 거예요. 그저, 그리워하기만 할게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리며, 한참을 차가운 공기를 맞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