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르는 열감에 난감할 때가 있었다
겨울이 되면 으레 그렇듯 얼굴이 바싹 마른다. 어릴 때는 느껴보지 못한 건조감에 이런 게 나이 드는 건가 싶으면서 착잡한 마음이 몰려올 때면 오랜 습관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촌병이다. 겨울만 되면 속절없이 붉어지는 얼굴에 난감할 때도 있었다. 그다지 부끄럽지도 않은데, 쑥쓰럽지도 않은데 얼굴이 붉어지면 부끄러운 사람이 됐다. 부끄러운 감정이 들어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아니라 붉어지는 얼굴에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잘 웃고 잘 화내고 잘 슬퍼하는 다양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이 찍은 사진을 보면 이렇게 딱딱한 표정으로 있었구나 싶어 놀랄 때가 있다. 눈은 어딘가 모르게 매섭고, 입은 억지로 웃고 있는 게 티가 날만큼 굳어있다. 내가 늘 이런 표정으로 있어서 이렇게 굳어버린 건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다면 포커페이스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난 포커페이스도 잘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게 '촌병'이라 이름 붙은 이유는 모르겠다. '시골 출신'인 나는 그저 촌병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이 들어보니 '홍조'라는 말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됐다. 홍조와 촌병의 사이, 도시와 시골의 차이인 걸까. 예전 중학생 때 '촌병'이라는 말을 처음 알려준 선생님은 '촌 애'들의 얼굴이 자주 빨개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의 정설을 알지 못한다.
다만 촌병이라는 말처럼 얼굴이 자주 빨개지는 건 그저 세련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얼굴이 확 붉어지는 걸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곤 하는데, 경험상 스스로를 다그치는 건 홍조를 가라앉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찬 바람을 쐬고 온다거나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는 등의 환기가 훨씬 홍조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과거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촌병에 갇혀버릴 때가. 몇 년 전 사람들 앞에서 쪽팔림을 당했던 발표 수업이라든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정답인 것처럼 떠벌려 친구들 앞에서 '모르면서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어느 정도 얼굴이 붉어진다. 같은 맥락으로, 내 책이 처음 펀딩을 통해 팔렸을 때도 나는 자주 촌병을 겪었다.
처음 하는 펀딩이었다. 막연히 언젠가 종이책으로 된 내 책을 만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해 초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을 묶어 책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소장용이지만 실제로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어내니 감회가 남달랐다. 한 번 해보니 어려울 게 없었다. 좋은 레퍼런스들을 찾기 시작했고, 겁도 없이 펀딩을 시작했다.
하지만 겁 없이 시작한 펀딩이 쉽지만은 않았다. 뭐가 제일 어려웠냐고 물으면 100% 달성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답할 수 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목표 금액의 50%는 당일에 달성했는데, 나머지 50%가 도무지 안 올랐다. 표지가 문제인가? 내용이 재미없나? 리워드 구성이 별로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가며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펀딩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부담감에 자면서도 심장이 뛰었고, 습관처럼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펀딩 페이지에 들어가 그 사이에 누가 책을 구매했는지 확인했다. 주말마다 책을 들고 다니며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마케터의 경험을 살려 광고도 진행했다. 펀딩을 오픈한 지 일주일 동안 광고비로만 10만원을 사용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 광고 또한 내 발목을 잡는 다른 손이 되어 틈만 나면 광고 페이지를 열어보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광고만 돌려도, 펀딩을 오픈만 해도 사람들이 구매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내 기대는 높았고 현실은 처참했다. 100% 달성을 기다리며 만약 펀딩이 엎어지면 나를 믿고 후원하고 응원까지 해준 지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면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만큼 불안했다.
처음에는 해보고 말지 뭐,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펀딩은 어느새 사활을 걸게 만들었다.
100% 달성을 위해 뭘 더 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몇 년 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들에게까지 생각이 닿았다. 처음으로 내 펀딩 소식을 알린 친구들이 내 꿈을 응원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친구들이라면, 이후에 연락을 취한 친구들은 펀딩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운 친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딩에 사활을 건 나는 뻔뻔한 낯짝을 하고 연락을 취했다. 몇몇은 축하한다며 내 꿈을 응원해주었고, 몇몇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언짢은 내색을 비췄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런 거'냐며 대놓고 구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열감이 확 차올랐다. 부끄러웠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으나, 펀딩을 핑계로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으나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몇 년 만에 연락 와 '청첩장'을 내미는 친구의 포지션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자주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고, 나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잘 해내리라는 마음으로 주변에 벽을 쌓으며 지내온 게 부끄러웠다.
결국, 펀딩은 성공했다. 지난하고 반복되는 걱정과 고민 끝에 무사히 펀딩은 성공했다. 사람들은 역시 될 줄 알았다며 으레 건넬 수 있는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촌병을 앓았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오랜 인연들에게 먼지 풀풀 풍겨가며 연락한 내 모습을 나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사람을 믿지 않아 기대 없이 살아왔지만 펀딩을 진행하며 느낀 바가 많았다. 생각보다 나를 응원하는 지인이 많다는 사실이었고, 경조사를 다 참석하고 챙기던 이들은 생각보다 내 꿈을 크게 응원하지 않았다는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목표를 꺼내놓고 도움이 필요한 때가 되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수만 배는 더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직 촌병을 겪는다.
나이 들면 없어진다는데 아직 나이가 덜 든 것인지 겨울만 되면 시시때때로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촌병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했던 모든 노력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지나고 보니 그저 나의 최선이었다는 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나의 최선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